안녕하세요, 저는 어필에서 작년 3월부터 인턴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이주어선원 캠페이너로 일하고 있는 조진서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필의 사무실이 있는 안국동으로 출근을 시작한지 어느새 2년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눌러앉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필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사랑스러움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가장 좋아한 업무는 통역이었습니다. 제 영어와 한국어, 짧은 프랑스어를 이리저리 퍼즐 맞추듯이 맞추어서 난민 분과 변호사님 사이에 통역을 하면 제가 소통의 징검다리가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난민 분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분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영어로 모자란 부분을 한국어와 구글 검색,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충의 눈치로 채워서 나름의 원활한 소통을 이룰 때면 난민 분과 저, 변호사님 셋이 잘 굴러가는 하나의 팀이 되어 ‘찰떡같이 알아듣기’ 미션 수행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듣는 데에도, 말을 전달하는 데에도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난민 분들이 때로는 감정에 북받쳐서,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각자가 지나온 일들과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말씀해주실 때면, 이 난민 분의 미래를 결정지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사님의 일을 잘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6개월 간의 인턴십이 끝난 뒤에도 이주어선원 캠페이너로서 어필에서 일하고 싶다고 처음 손을 들었을 때, 사실은 이주어선원이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낯선 사람들일 것 같아서 조금의 도전의식과,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 변호사님들이 계시니 어떻게든 괜찮을 것 같다는 약간의 대책 없음이 잘해보고 싶다는 설렘과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온, 뱃일이라는 거친 일을 하는 아저씨들의 세계에서 일한다 생각하니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RFMO, PSA, 까밀라… 영문 모를 약어들에 1차로 당황하고, 선원법과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복잡하고 다양한 규정들, 그 중 이주어선원들에게 적용되는 사항과 제외되는 것들, 일하다 “도망갈까봐” 보증금을 미리 내서 인질로 붙잡아두는 등의 비상식적인 일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2차로 당황했습니다.
이주어선원들과의 인터뷰는 한국에서의 일들을 주로 물어보는 것임에도 난민과의 인터뷰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쉬는 날이 일정하지 않은 이주어선원들은 만나기가 어려워 한꺼번에 여러 명을 인터뷰하고 설문 조사할 때면 통역사가 모자라 한국어와 영어, 몇 개 없는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어 단어들을 모두 동원해 질문하고 답을 듣습니다. 양식장에서 일하는지, 배에서 일하는지, 쉬는 날은 있는지, 사장님에게 여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하루에 몇시간을 일하는지, 일하다 다친 적은 없는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주위 동료 선원들의 도움을 받고 그림도 그려가며 설문지를 채워 나가다 보면 결국 애타게 통역사 선생님을 찾게 됩니다.
지난 여름, 전라북도의 개야도라는 작은 섬의 어촌에서 이주어선원들과 이러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곳의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베트남 선원들을 대상을 설문조사를 한 결과 드러난 개야도 이주어선원들의 인권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쉬는 날이 일년 동안 설 연휴 3일 밖에 없다는 선원,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선원, 법적으로는 일한 시간에 따라 시급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일한 시간과 상관 없이 훨씬 낮고 차별적인 임금을 받고 있는 선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끼니로 밥 대신 초코파이를 줘서 배가 고프다는 선원도 있었습니다. 설문조사를 하러 갔던 활동가들은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섬에서 나오는 배를 타야 했습니다. 개야도의 100명이 넘는 선원들에게 이것저것 그들이 일하는 환경에 대해 물어보고, 어쩌면 무언가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그들에게 심어주었지만 변화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산으로 나와 관련 정부기관에 개야도에서 저희가 알게 된 것을 공유하였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정부기관들의 반응은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알게 된 개야도의 상황을 잘 공론화시키고 우리와 만난 이주어선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막막하게 다가오던 때, 한 활동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선원들이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그들을 위해 그 말을 전달할, 그들의 취약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잘 알릴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원 혹은 난민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 받는 것이었습니다. 듣는다는 행위가 새삼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던지요. 통역이든 조사원이든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이 말을 무사히 전달할 의무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난민 혹은 이주어선원 분들과 인터뷰할 때, 저는 한국어로, 영어로, 짧은 프랑스어로, 아는 인도네시아어 단어 몇개로, 구글 번역기로,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말하는 사람과 전달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모두 함께 수행해야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으려면 어서 바삐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진심을 담아 제 맡은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을 때마다 다시 다짐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조진서 캠페이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