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 어필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난민불인정결정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결과를 받았고, 난민 분께 승소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대리하던 사건에서 승리를 거머쥔 데에서 오는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변호사로서는' 약간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난민 보호 체제를 크게 나누면 난민지위인정절차(Refugee Status Determination, RSD), 재정착(Resettlement), 그리고 재정착을 보완하는 보충적 수용 경로(Complementary Pathways)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송무, 즉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절차상 포함된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것이 RSD이고 저 또한 어필과 함께 한 일여 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을 이 영역에서 보냈습니다.
행정소송, 거칠게 말해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율은 약 1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난민 소송, 즉 원고인 난민이 피고 행정청이 내린 난민불인정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율은 약 0.2%에 불과합니다. 이 처참한 숫자 앞에서 받아든 승소 결과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아득함과 함께 '이게 맞나? 내가 잘 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권리를 가질 권리(right to have rights)'를 말했습니다. 난민의 맥락에서는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바로 그 권리를 가질 권리일 것입니다. 체류 자격이 있어야 노동도, 교육도, 의료도, 심지어 가족과 함께하는 삶마저도 비로소 '권리'가 됩니다. 그러니 흔히 이렇게들 말할 것입니다. 난민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법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일이라고.
그런데 한국에서 난민 사건을 하다 보면 그 믿음이 자주 흔들립니다. 앞서 말했듯 난민불인정취소소송의 원고 승소율이 약 0.2%, 전체 난민인정률도 매년 2%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라는 말은 공허합니다. 당장 내일 먹을 음식과 오늘 밤 머물 곳, 일을 구하는 문제가 훨씬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적 지위의 중요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난민들이 흔히 'paper visa'라고 부르는 종이 한 장에 삶 전체를 의탁한 채 몇 년씩 살아갑니다. 박해를 피해 도망친 데 가장 책임이 없는 사람을 꼽자면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일 텐데, 형벌과도 같은 불안정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것 또한 그들의 몫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이력은 줄곧 이 둘 사이를 갈지자 걸음으로 걸어온 길입니다. 변호사가 되고서는 '둘 모두가 중요하고,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라는, 어찌 보면 고민한 시간이 아깝다 싶을 정도의 당연한 결론으로 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산레모 국제인도법 코스를 통해 그 결론이 그저 손쉬운 타협은 아니었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산레모 국제인도법연구소의 클라우디오 델파브로(Claudio Delfabro)가 강연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은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러 직접 찾아가야 한다.
이 말을 듣고 제 일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변호사의 일,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RSD 업무는 본질적으로 '의뢰인(난민)-대리인(변호사)'의 관계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찾아와야 사건이 시작되고, 제가 하는 법률 조력의 효과도 그 한 사람에게 귀속됩니다. 물론 판례가 만들어지고 제도·정책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개별 사건을 단위로 업무가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저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요? 지금껏 해온 것처럼 RSD에 집중하고 여력이 되는 한에서 옹호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산레모 코스가 위 질문에 답변까지 주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법적 지위는 중요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삶도 중요합니다. RSD를 통해서도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러 직접 찾아갈 방법이 있는지, 혹은 옹호 활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러 직접 찾아가는 일에 해당하는지, 그 모든 의문을 차치하고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 산레모 코스는 제가 이미 끝냈다고 생각했던 고민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답변보다도 귀중한 것을 선사했습니다. '들리지 않는 사람을 찾아가라'는 말은 앞으로 제가 변호사로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제 시야가 눈앞의 의뢰인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답은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잊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희진 변호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