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10회’라는 숫자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열 번이라는 시간 동안 난민영화제가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만들어 준 감독들, 자리를 찾아와 준 관객들, 후원자님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 준 많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이어져 온 영화제는 올해도 우리 앞에 몇 편의 낯선 이야기를 놓아 두었습니다.
〈푸른 장벽〉은 국경이 어떻게 사람을 밀어내고 가두는지를 보여주었고,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한 난민의 시간을 따라갔습니다. 〈피난의 동지들〉은 전쟁과 피난 속에서도 이야기를 붙잡으며 버텨내는 사람들의 우정을 보여주었고, 〈보이지 않는 창살, 하나의 라이터〉는 메솟으로 돌아간, 국경 밖으로 밀려난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 보이지 않는 경계 속에 갇힌 삶의 감각을 조용히 비춥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영화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난민’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이름과 서사를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었습니다.
영화 속 낯선 사람들을 보면서 낯선 사람을 단지 낯선 사람으로만 보지 않게 되는 순간, 타인의 삶이 더 이상 멀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는 바로 그런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5월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인도네시아 토착민들의 삶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로 떠나신 정신영 변호사님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계 어디에 있든 결국 누군가의 친절과 이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여행자와 난민의 경험은 같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었고, 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 차이가 커서인지 영화에서 건넨 이야기들은 더 오래, 더 깊이 그리고 아프게 마음에 남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 쉽게 판단하지 않는 일, 그리고 경계 너머에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는 일. 어쩌면 영화제가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바로 그런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제10회 난민영화제에 참여하며 저는 다시 한번 이야기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국경은 사람을 나눌 수 있지만, 이야기는 사람을 연결합니다. 우리가 열 번째 난민영화제를 준비한 이유도, 어쩌면 바로 그 연결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열 번째 불이 켜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불빛이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비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윤이나 운영팀장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