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시작하는 환대의 현장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함께한 게 언제인가요? 그 집에서 이렇게 넘치는 환대를 받아본 적은 또 언제인가요? 저는 기억 나지도 않을 만큼 오래된 것 같습니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을 나누는 일 자체가 이제 주변에서는 거의 찾기 어려운 전통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필은 지난 9월 29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가족의 초청을 받아 이렇게 잘 준비된 식사를 마음껏 누리다 왔습니다.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인데, 성대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미라클 작전으로 카불에서 나뉘어버린 가족의 기막힌 운명
저희를 초대한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로서 지난 2021년 미라클 작전을 통해 들어온 분들이었습니다.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에서 장기간 근무해온 아버지 A의 이력으로 특별기여자로 인정을 받아 아비규환인 카불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인데, 가족들은 눈물의 이별을 겪고 맙니다. 특별수송작전 명단에서 A의 성년 자녀들은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B), 형제자매들이 한 집에 모여 가족으로 살아왔고 그렇기에 탈레반으로부터 외국 정부 협력자로 보복을 당할 위험에는 차이가 없는데, 단지 성년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맏형 C, 누나 D, 맏형과 결혼한 E, 그리고 어필의 조력을 통해 최근 난민인정 확정판결을 받은 형제 F, G는 아버지와 어머니, 당시 미성년이었던 막내 여동생 H가 한국으로 급히 탈출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 형제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녀들을 위험천만한 땅 카불에 두고 한국행 수송기를 타야 했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아프간에서 이란으로, 이란에서 한국으로, 그러나 난민은 아닌
카불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던 형제들은 임박하고 실재하는 위험 속, 외출이나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불안은 실제 위협과 사건들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아프간은 더 이상 자신들의 조국이 될 수 없었고 카불은 더 이상 이들의 고향이 될 수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탈출을 감행하였고, 그 순서는 당시 더 나이가 어렸던 F(1998년생, 미라클 작전 당시 23세)와 G(2000년생, 미라클 작전 당시 20세)에게 돌아왔습니다. F, G 형제는 위협과 긴장을 뚫고 이란으로 건너가 특별기여자인 아버지의 초청 비자를 통해 2023년 초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난민인정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출입국은 2024년 3월, 개별적인 박해 경험이 부족하다며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박해의 위험이나 그 근거 면에서 사실상 난민과 동일하다고 여겨지는 특별기여자 가족들(아버지 A, 어머니 B, 여동생 H)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 집에서 함께 살아온 가족인 이 두 형제는 난민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법원이 인정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한국으로 긴급 탈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여러 방면으로 조력을 해온 공익법센터 어필은 이 두 형제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소송을 대리하였습니다. 저는 과거 유엔난민기구와 어필이 함께 한 김포 지역 특별기여자 가족들 면담 자리에서 이들을 만났던 인연으로 이 소송 사건을 담당하였습니다. 사건을 진행하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김민지 변호사(키미)를 통해 일본 아프간 난민조력 변호사님들에게 주아프간 일본 대사관에서 일한 직원의 성년 자녀 난민인정 사례를 확인받아 자료를 제출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차례의 서면 공방, 당사자본인신문, 1심 승소, 출입국 항소로 이어진 2심, 승소 확정까지 1년 4개월 정도 걸렸고, 그 사이 동생 G는 안면이 일부 마비되는 스트레스성 증상을 앓기도 하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신문에 참여하는 형 F와 함께 법원에 출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단하여 특별기여자 성년자녀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대사관 근무 경력으로 인해 동거 가족이자 직계비속인 형제들에게 탈레반 당국이 중대한 위해를 가할 우려가 충분하다는 합리적인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위 각 보고서 등과 관련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원고들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정부 협력자 내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테러가 발생하고 있고, 탈레반은 그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를 제공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박해의 주체로서 이를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 이러한 상황에 더하여 앞서 본 각종 보고서 또는 기사 등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도 탈레반의 정치 체계이자 이념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반대하고 위배하는 견해를 가졌거나 탈레반 당국에 의해 그러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커 탈레반 집권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박해를 받을 우려가 큰 사람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어지는 난민인정 판결 승소 소식
이 승소는 비슷한 시기에 함께 진행되었던 다른 두 특별기여자 성년 자녀 형제들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KOICA의 국제개발협력 관련 직업 훈련소에서 일했던 아버지, NATO와 일했던 친형으로 인해 탈레반의 박해 위험이 중대함에도 출입국은 이 형제들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이유로, 즉 개별적으로 경험한 박해가 없거나 관련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난민불인정결정을 하였습니다. 어필은 이 형제들의 소송도 대리하였고, 얼마 전 1심에서 승소하였습니다. 법원은 탈레반의 박해 위험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판결은 항소 없이 그대로, 추석이 지난 얼마 전 확정되었습니다.
“원고들은 그 박해 대상의 아들 또는 남동생으로 가까운 가족인바, 박해 대상이 없을 경우 그 대체물로서 또는 박해 대상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협박 대상으로서 또는 박해 대상의 귀국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탈레반에 의해 생명, 신체, 자유 등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당할 위험이 존재한다. 탈레반이 박해 대상의 가족들에 대해서까지 항상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보고도 있기는 하다. 이는 탈레반이 어떠한 기준으로 대상을 선별하고 위협하는 지에 관한 체계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없고 현장에서 색출 작업을 담당하는 탈레반의 자의적인 판단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이는바, 원고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그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서 위협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원고들의 입장에서는 원고들의 생명, 신체, 자유를 운(運)에 맡기는 것이 된다] 원고들이 본국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환대하는 마음과 행동을 배웁니다
이러한 사건과 승소 소식 가운데, 어필은 특별기여자 가족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가족의 재결합과 난민인정을 축하하는 자리이면서, 난민 가족들이 저희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는 사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이라서, 이처럼 성대한 환대에 빨리 적응하지는 못했습니다. 몸둘 바를 몰랐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가족들은 당신들에게 얼마나 저희가 소중한 손님인지, 얼마나 극진히 대접하기 바라는지 친절히 말씀해주셨고, 아프간인들에게 손님이란 원래 그렇게 환대받는 자들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음식이 모자랄까 끊임없이 접시들이 채워졌고, 자리가 불편할까 편히 기댈 수 있는 쿠션들이 수차례 오갔으며, 이제 활짝 웃어 보일 수 있게 된(안면 마비 증세를 극복한) 동생 G는 저희들을 한 명씩 살펴 보며 부족하고 불편해 보이는(사실 저희는 부족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지만) 것들을 챙기느라 식사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게 원래 자신이 손님을 맞이할 때 하는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2021년 미라클 작전 때 눈물로 이별한 막내 여동생을 진심으로 아끼는 오빠의 마음, 그렇게 헤어졌던 부모님과 가족들을 생각하는 형제들의 속 깊은 마음, 몸이 아프신 중에도 저희들을 위해 그 많은 음식을 차려주신 어머니와 역시 허리가 아프신 중에도 곁을 떠나지 않으며 저희들을 챙겨주신 아버지의 마음까지 저희는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환대하는 마음과 행동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저는 이 환대의 자리에서, 그리고 이 자리를 돌아보며 계속 이 말이 마음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환대하는 일에 늘 어색함과 부족함을 느낍니다. 환대하는 마음과 행동을 배우고 싶습니다. 다행히 어필에서는,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난민이나 취약한 이주민들에게 환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거꾸로 엄청난 환대를 받기도 합니다. 이 날의 일처럼 말입니다.
바늘귀 같이 가느다란 희망에 겨우 기대어 사는 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지치게 마련인 이곳에서, 아프간 난민 가족들이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환대는 큰 힘을 주었습니다. 비틀거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듯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글을 쓰는 즈음에, 두 번째로 승소 확정된 아프간 난민 가족들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어필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또 몸둘 바 모를 식사를 준비하실 것 같아 내심 죄송하지만, 환대의 마음이 고맙고 힘이 됩니다. 저희도 그렇게 힘을 주는 환대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환대받은 사람이 다시 환대하는 사람이 되는 그 선순환 속에서, 어필은 오늘도 정의를 짓습니다.
이종찬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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