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5년 9월] #70. 0원짜리 변호사라는 벼슬 - 김주광 변호사

2025년 9월 19일

맡고 있는 한 난민분의 소송에서 피고 출입국이 자신의 주장을 가득 담은 서면을 냈습니다. 피고의 주장에 잘 반박을 해야겠다 싶어 난민분께 출입국의 주장을 전달하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난민분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화가 날라왔습니다. 가장 먼저는 가지고 있는 사진, 영상, 문서 등 많은 증거에도 자신이 난민임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출입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화는 그에 대해 질문을 한 제게도 날라왔습니다. 출입국도 출입국이지만 자신이 마치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질문을 하는 제가 더 놀랍다는 취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팍 상했습니다. ‘피고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한 질문인데’, ‘이걸 준비하면서 내 시간을 얼마나 들였는데’, ‘심지어 휴무일에도 사건을 위해 일 했는데’, ‘내가 돕는 당신에게 뭔가 받지도 않고 일 하는데’

“당신이 이런 식으로 협조를 안 하면, 사건 돕기 어렵다” 라며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소송을 위해서, 한국에서의 난민 인정을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하지.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받고 있지 않고 있다. 그 상황을 강조하며 협조를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수임료를 받지 않는 공익변호사라는 내 위치를 의뢰인에게 마치 벼슬이 주는 권력처럼 휘두르려고 했던 것은 아닐지… 이 일을 하며 그러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하고 싶었던 것 같은 그 말을 조금은 바꾸어 주저리 주저리 좀 더 긴 답장을 보냅니다. “어려운 상황이신 것을 이해한다… 질문이 공격적이었다면 사과드린다… 내 부족한 소통 능력, 언어의 장벽 때문에 무례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하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떤 보상을 받지 않고 당신의 사건을 위해 애쓰고 있다… 판사님께 상황을 잘 설명드리려면 이러한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우신 상황인 것은 알지만 잘 협조해주셔야 상대방의 주장을 잘 반박할 수 있다… 제 질문 중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을 부탁드린다… 그렇지만 사건을 잘 설명하기 위한 질문이지 당신을 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난민분께서 자신이 난민으로서 겪고 있었던 압박감을 말씀하시면서 제가 보냈던 것만큼 긴 답장으로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걸 읽으며 그 벼슬을 그렇게 휘두르지 않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며, 0원짜리 변호사라는 것을 벼슬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제가 썼던 답장을 돌아봅니다.

변호사로서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고 앞으로 제가 배워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어떻게 협조해주셔야 더 잘 도울 수 있는지 말씀드리는 것’, ‘돕고 있는 상황을 설명드리며 정돈된 언어로 의도를 잘 전달하는 것’, ‘의뢰인으로부터 합리적이지 않은 요구가 있을 경우 그에 끌려가지 않는 것’, ‘도울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인정하는 것’, ‘저희가 가진 자원을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잘 배분하는 것’ 등을요. 또한 동시에 제가 뭐가 된 것 마냥 누군가를 돕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0원짜리 변호사가 아닙니다. 후원자님들께서 취약한 이주민과 외국인을 위하여 대신 내어주신 소중한 관심과 자원들을 받으며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만나고 돕고 있습니다. 액수로만은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제가 의뢰인분들을 0원짜리 변호사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잘 나서 얻은 벼슬이 아니라 선물로 받게 된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더 낮은 마음으로 어필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김주광 작성)

최종수정일: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