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2월] #73. 세상이 엉망인 것 같을 때에 - 정신영 변호사

2025년 12월 17일

2011년 8월 말, 고속터미널역 근처의 어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서울보다 파주가 더 가까운 고양시 끝에서 사무실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꼭 일하고 싶었던 어필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오가는 길이 전혀 고단하지 않았습니다. JC에게 처음 받은 업무는 소수민족 출신 난민 분의 진술서를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진술서를 읽으면서 소수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는 장군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폭탄을 피해 대나무 숲에 숨고, 신분을 속이고 친척 집에서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니고,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잡혀가 “네 정체를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은 난민 분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평범하게 살아온 저에게는 낯설었을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아낸 시간을 담아낸 진실한 글의 힘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어필에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 억울하게 갇히고 착취당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이 난민 인정을 받고,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나고, 삶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난민신청절차 등을 도왔고, 때로는 유엔과 같은 국제인권절차도 활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법과 정책을 바꾸기 위해 국회의원과도 협력을 하고, 더 널리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고서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14년 전 처음 출근했던 그 날보다 세상이 더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난민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난민인정을 받기는 너무나도 어렵고, 그렇게 어렵게 난민인정을 받은 후에도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이 만들어졌지만 이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열악한 일자리에 이주민들을 모집하고 착취하며,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토착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 기업은 ESG 우수기업으로 셀프 홍보를 하며,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깝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주민들의 소식과 소수자 혐오의 확산을 마주할 때면, 우리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답답한 마음에는 당사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도 있지만, 내가 애쓴 것들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불순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어필에서 일하는 동안 안팎으로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서울에서 비교적 많은 주목을 받고 칭찬도 듣는 공익변호사 단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저와는 달리,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의 눈길이 닿기 어려운 지역에서 묵묵히 이주민들과 토착민, 지역공동체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활동가들, 연구자들, 연대단체의 동료들의 만나면서 성과를 보고 싶어하는 저의 마음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아직 저는 낙심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어필에서 일하는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 없이 내어주며 살아가는 이들이 뿜어내는 생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제 마음에는 어둠이 오래 자리잡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진술서의 주인공은 저의 마음에 오래도록 빛을 비추고 있는 언니 중 한 사람입니다. 진술서를 읽고 나서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의 얼굴은 왠지 강한 인상을 가졌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온화한 인상의 아기 엄마가 나타나서 살짝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난민 언니는 한국에 체류자격 없이 10년 넘게 거주한 상태였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내어 난민신청을 하셨고 감사하게도 난민 인정을 받은 뒤 한국 국적도 취득하였습니다. 그 사이 언니는 늘 주변에 어려운 사정이 있는 이주민들과 고향의 난민들을 돕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에는 같은 소수민족 출신 유학생들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들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식당을 차렸습니다. 언니의 큰 손 덕분에 고향 음식을 먹고 힘을 낼 유학생들을 생각하니 저까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팜유 플랜테이션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인도네시아 시골 마을에서 만난 토착민들도 제 마음에 빛을 비추는 언니들입니다. 숲을 잃고 겪게 된 어려움을 묻는 저에게 언니들은 숲이 주었던 풍요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숲에는 공동체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며,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제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나뭇잎의 효능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하던 언니, 그냥 들기도 무거운 도끼로 사구(sagu) 나무를 내려치면서 전분을 모으던 언니, 멧돼지 사냥법을 자랑하던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손길이 공동체를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구 가루로 구운 빵과 직접 잡은 생선, 갖은 채소로 정성껏 차린 상을 대접 받으며, 숲이 사라진 마을에서도 공동체를 한결같이 먹이고 살리는 언니들의 부지런한 손길이 있는 한 숲을 지키는 싸움에서 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세상이 더 나아졌다는 확신은 없지만, 저의 마음은 조금 더 밝아졌고 겸손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손길로 살아가는 곳곳의 언니들의 삶이 더 궁금해져, 인권의 언어로는 정리될 수 없는 더 많은 이야기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어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인도네시아어를 배울 예정입니다.

좁고 높은 저의 마음에 생명과 사랑의 빛을 비추어 밝혀 주신 어필 안팎의 동료들과 당사자 언니들, 무엇보다 허물을 덮는 넉넉한 사랑으로 저를 아껴주신 어필의 모든 동료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한결같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후원자 분들께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의 어필에서의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은 후원자 여러분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어필의 동료들에게 변함없는 격려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엉망인 것 같을 때에도 우리를 살리는 부지런한 돌봄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생의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기를,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향한 소박한 소망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