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들려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언어의 장벽을 자주 느끼는 어필에서는 더욱 그 눈빛이 크게 들리는 순간이 많습니다.
이번 달 초, 몇 년 만에 새로 나온 영화 아바타 시즌 3를 보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 방문했습니다. 새로운 부족의 등장과 이야기 속에서도 제게 기억이 남는 것은 아바타의 명대사 “I see you”였습니다. 어필에서의 경험을 통해 단순히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긍정한다는 감각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어필에 합류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제 마음에 남아있는 눈맞춤의 순간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가장 기억에 남는 눈맞춤은 실무수습 면접에서의 눈맞춤입니다. 네 분의 크루들이 제 면접에 함께 해주셨는데요. 처음엔 긴장되고 떨렸지만, 크루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며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는 모습에 점차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멋진 분들께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신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 분들과 일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만약 함께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쿨하게 어필의 활동을 응원하는 후원자가 되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쿨하지 못하게 “이건 이렇게 말씀드릴걸, 그 질문에는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라며 답변을 후회하며 맘을 졸이다가 합격 이메일을 받고 저녁을 먹던 식당을 뛰쳐나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인도네시아 어선원 실태조사 출장
지난 여름, 어필에서 약 10년 동안 진행해 왔던 이주 어선원 프로젝트의 실태조사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떠나는 출장에 기대하는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산업의 인권침해 조사를 위해 간 것이었기에 죄송하고 무거운 마음도 컸습니다. 이주 어선원분들도 한국에 오기 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애쓰셨을 것 같아서, 저도 벼락치기로 EBS 인강을 들으며 간단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해 갔습니다.
사실 일주일 공부로는 간단한 인사말밖에 못 했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습니다. 인터뷰이의 말씀이 길어질 때면 통역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 지루해지기도 하고, 또 시간이 밥을 먹고 난 때이면 졸음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들의 눈빛을 들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우리가 당신의 이야기와 어려움을 들으려고 여기 왔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었던 이주 어선원분들의 눈빛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 이집트 난민 당사자 신문 조력
한편, 이집트 난민분의 당사자 신문 준비를 돕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수 년이 되었음에도, 난민불인정결정을 받고 이의신청을 거쳐 행정 소송까지, 길어진 법정 다툼 속에서 자신의 박해 경험과 오래된 이야기들을 반복하느라 지친 모습이셨습니다. 몇 차례 상담하면서 당국으로부터 구금과 감시를 당하고, 부당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중대한 박해 경험에도 불구하고 난민인정이 되지 않는 현실을 체감하며 이분은 꼭 잘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사자 신문 당일, 난민분께서 긴장한 모습으로 계시다가 신문을 모두 마치고 함께 법정을 나왔습니다. 법정을 나오자마자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며 “내가 잘한 것 같냐”고 물어보시자 엄숙한 법원에서 진지한 변호사 모드로 있던 제가 다소 경박스럽게 웃으며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구글 번역기로 소통을 하며 모든 물음에 다 답변은 드릴 수 없었지만 지쳤던 눈가에 해맑은 웃음이 보이니 저도 덩달아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 아프가니스탄 가정집 방문
지난해 어필 뉴스레터에도 공유해드렸던 소식인데요,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하신 아프가니스탄 난민 가정에서 어필 크루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난민분들께서 크루들 한 명 한 명에게 심장에 손을 얹는 전통 방식으로 감사의 표현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1심 승소 이후 항소이유서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것이 다였기 때문에 “내가 이런 보람과 영광을 누려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크루들과 아프간 가족들 모두 제2의 언어인 영어로 말해야 했기에 그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나누지는 못했지만, 한 명 한 명 눈에 담으며 감사를 표하시려는 그 눈빛,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며 크루들의 접시와 잔이 비지 않는지 살피시는 그 눈빛을 통해서 더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슬픈 눈맞춤
한편, 슬프고 답답한 눈맞춤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아쉬운 마음 가득한 쩡의 송별회 시간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어필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걸어가실 쩡과의 작별 인사를 위해 크루들이 노래를 준비하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요. 송별회 당일, 노래를 부르다가 쩡의 눈을 마주치자, 목이 메어 16마디도 되지 않는 가사를 끝까지 다 부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필에 방문한 손님들을 따스하게 환대해 오셨을 그 다정한 눈빛으로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담으시는 것을 보며 이별의 의미가 갑자기 실감 났기 때문일까요. 앞으로도 그 다정함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 인천공항 불회부 사건 조력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습니다. 한 공항 난민의 불회부 사건을 조력하게 되었는데, 초반에는 난민 사유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송이 진행되면서 드러난 여러가지 증거와 진술이 저에게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서면을 작성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들고, 또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 안에 의심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는 크루분들의 조언에 공항으로 다시 찾아갔지만, 차마 이전과 같은 눈빛으로 그분을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다소 차가운 분위기로 반복되는 질문 속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도 끝까지 미소와 친절한 태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던 난민분 앞에서, 답답해하는 제가 가장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주어선원 진정거부 사건 기자회견
또 눈맞춤할 상대가 없어 당황하기도 했던 때도 떠오릅니다. 어필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보면 기자없는 기자회견을 할 때가 있는데요. 대통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대통령실 앞에서 이주 어선원의 진정 거부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날이 기억에 남습니다. 청자는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솔직하게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인도네시아에서 마주했던 눈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단지 서서 구호를 따라 외치기만 했지만, 새삼 저의 외침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는 제가 마주했던 수많은 눈을 대신해서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제 앞에는 아무도 없지만 제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표정과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다소 결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저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눈들이 마음속에 종종 떠오릅니다. 또 앞으로도 어필을 통해 반갑게 마주하게 될 눈들이 기대됩니다.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아도 눈과 마음으로 듣게 될 많은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더라도 눈맞춤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를 나누며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눈물을 닦아주며 곁을 넉넉히 내어주는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이다이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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