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인사말
난민을 대리하여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난민과 간단한 소통을 해야할 때 문자로 대화를 나눕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용건을 말하기 전에 예의상 서로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그냥 지나가는 인사말인데도 종종 다시 생각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힘든 날씨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당신이 안전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한국의 겨울은 좀 외롭네요.”
“안전하세요.”
박해의 위험을 피해 혼자 한국에 온 난민 A씨가 저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A씨는 한국의 겨울 날씨가 아직 힘든가 봅니다. 난민인정신청, 난민불인정결정, 이의신청, 이의신청 기각결정,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 1심 패소에 이어 항소심을 진행하는 중에 맞이한 한국에서의 여덟 번째 겨울입니다.
A씨의 본국에서 흔히 쓰는 인사말을 영어로 직역하면 ‘Be safe’인가 본데 어쩌면 A씨는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 자기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빌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 초대해서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하면 겨울이 조금 덜 외로울까? 일을 하며 만나는 모든 난민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을 텐데 괜히 오버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만 하다가 겨울이 다 지나갔습니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의뢰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법원에 낼 서면이나 열심히 써서 승소를 돕자는 핑계로 A씨를 덜 외롭게 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B씨의 일상
난민을 직접 만나는 상담에 앞서, 먼저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여러 문서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퍼즐 조각처럼 모아서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봅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출입국 공무원과 난민신청인 간의 문답을 기록한 난민 면접 조서를 읽다가 멈추어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신청인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나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4년 동안 언어만 배웠습니다.”
(신청인은 현재 더 이상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공장에서 일만 하고 잡니다.”
본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견해를 드러냈다가 수년간 구금되고 구금에서 풀려난 후 변호사로 일하던 B씨가, 난민인정 신청을 한 지 3년 만에 진행된 난민 면접에서 받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정치활동을 했다가는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2항과 동법 제46조 제1항 제8호에 의해 강제퇴거명령을 받을 수도 있으니, B씨가 본국에서 하던 정치활동 같은 것에는 관심을 둘 새도 없이 일만 하고 잠드는 '안전한' 생활을 하고, 그 덕분에 출입국 공무원 앞에서도 '안전한' 대답을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어필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날 들은 강의에서 코넬리우스 플랜팅가가 환대를 '우리 안에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그 안에서 꽃피도록(flourish)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고 배웠는데, B씨를 꽃피도록 하는 그 환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직 궁금합니다.
C씨의 아기 이름
C씨는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와서 난민인정 신청을 한 후 여러 단계를 거쳐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만 8년이 걸렸습니다. C씨는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 ‘안전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기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C씨가 안전한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온 지난 여정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안전은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라고 합니다. 모든 난민이 그토록 원하는 안전이 그들의 삶에 꼭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안전이 꿈이고 소원인 때는 금방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단단한 안전을 토대로 자신을 마음껏 펼쳐 꽃피우는 삶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곧 봄이 온다고 하는데 이들이 활짝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민지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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