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5년 6월] #67. 상처 위에 피는 다정함 - 윤이나 운영팀장

2025년 6월 18일

어느덧 어필에서 세 번째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르긴 싫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해도 늘 최고의 풍경을 주는 북한산과 인왕산 대신, 아기자기한 남산이 보이고, 늘 배고프게 만들던 빵 굽는 냄새 대신 건물 입구부터 꽃집 냄새가 나는 새로운 사무실에서, 낯설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또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후원자들과 통화하는 업무를 새롭게 하고 있는데요. 모든 분들과 통화하는 건 아니지만, 신규 후원자님들 그리고 사정으로 후원을 중단하게 된 분들과의 통화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얼굴을 보지 않고 모르는 분들과 통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전화를 자꾸 미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후원자님들의 따뜻한 진심 덕분에 그 부담감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님들이 어필을 후원하게 된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마음만큼은 참 닮아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 강의, 기사, 행사 그리고 지인의 추천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필을 알게 되고, 그 끝에는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을 어필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진심 어린 메시지들 속에서 저는 매번 다정함을 발견합니다. 혐오와 혼란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자신의 노력과 시간, 땀의 결과물을 기꺼이 건네는 일. 그 마음이 무엇보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후원자님들 중에는 어필 동료들의 지인도 있습니다. 소수이지만, 가까운 가족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 당숙까지... 이 정도면 거의 '남' 같지만 '가족'이라며 후원을 시작한 분들입니다. 가족끼리도 연락을 잘 안 하는 시대에, 이렇게 먼 친척까지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면, 어필 동료들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왔는지 느껴집니다. 연락이 끊겼던 초중고 동창이 활동 소식을 보고 후원을 시작하기도 하고, 같은 교회, 학부모 모임, 대학교 선후배, 동아리 인연으로 시작된 지지의 마음들이 지금의 어필을 든든히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가끔은 귀여운 청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우리 ㅇㅇㅇ변호사 좀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요.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자면, 부탁하시는 그 변호사님들은 다들 너무 잘 지내고 계시고, 저도 많이 챙김 받고 있어요. :)
그리고 어필에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후원자님들도 계십니다. 어필에서 인턴이나 실무수습으로 함께 했던 분들입니다. 고사리손으로 후원을 시작했던 분들이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변호사가 되고, 연구자가 되어 계속 어필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말 그대로 '같이의 가치'를 오래도록 지켜온 소중한 분들입니다.
 신규 후원자님들과의 통화만큼이나, 후원을 중단하시는 분들과의 통화도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은 분들의 삶에 변화가 있었고, 어필이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며 함께해주신 오랜 후원자님들이 은퇴를 하시면서 중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껏 후원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다정한 우리 후원자님들은 중단하시면서도 늘 미안해하시고, 언젠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늘 응원한다고 하십니다. 단 한번의 후원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에 늘 감사한 마음뿐인데, 이렇게 귀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셨구나 라는 생각에 통화 중에 울컥하며 눈물이 날 것 같아 일부러 크게 웃으며 전화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자극적이고 혐오가 가득한 말들은 유난히 눈에 띄고,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조용하고 잔잔하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다정한 마음이 때론 묻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일하는 나의 동료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난민과 이주민, 젠더 폭력 피해자들이 그동안 마주했던 수많은 거절과 혐오의 시간 위에, 후원자님들의 따뜻한 응원과 말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요.
그 다정한 마음들은 상처 난 자리에 천천히 스며들어, 결국엔 그 자리를 회복과 사랑으로 채워줄 것입니다.

 그렇게 이 여름, 어필은 다정한 마음들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졌고, 더 따뜻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 끝에서, 작은 바람을 담아 조심스레 여쭤봅니다. 앞으로도 함께해 주실 거죠?

최종수정일: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