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2월] #37. 우리의 비틀거림이 춤사위가 되도록 - 강민주 연구원

2023년 2월 2일

참 지난하구나.

어필에서의 짧은 시간동안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주 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상황이 참 속상하고, 막막하고, 힘껏 노력해 보기는 하는데, 솔직히 앞으로 더 나아질지는 잘 모르겠고. 작은 축하할 일을 지나서, 또 다시 차가운 현실을 버티러 나아가야하고. 비틀거리며.

어쩌다보니 어려서부터 제 주변에는 각자의 시선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장 힘든 사람들을 찾아 함께하려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들 비틀비틀 하시더라고요. 때론 세차게, 때론 잔잔히, 또 때론 아주 풀썩 주저 앉아 버리시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또 저도 아주 작게나마 삶이란 걸 경험해 보면서, 그래, 참 안 그래도 연약한 우리 자신으로서 거대하고 부조리한 구조에 부딪히며, 막막하고 안타까운 사건들을 다루어 보자면, 한 없이 비틀비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여러분들도 비슷하시지 않을까요. 어떤 거창한 정의나 사명을 엮지 않더라도, 다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오롯이 마주하며 걸어가고 계시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도, 어필과 함께하시는 여러분들이라면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정의’를 지어가는 중이시겠지요. 비틀거리며.

아이고 글이 너무 우울했나요.

그럼 이제는 사실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얘기, 어필에서 제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매일 아침 사무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경쾌한 인사소리,
누군가가 내리는 커피의 향기,
선물로 들어온 간식을 먹으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
추운 회의실에 히터를 켜고 긴장한 누군가의 두 손에 내미는 따뜻한 차 한잔,
간절한 엄마 옆에 선 눈망울들을 위해 비품을 뒤져 찾아 낸 색칠공부와 색연필,
축하할 일이 생긴 동료를 위해 함께 끓여낸 뱅쇼의 잔향,
점심마다 아기자기한 안국 거리에서 골라가는 귀여운 식당들,
퇴근 길 계단의 넓은 창으로 보이는 산의 절경과 노란 불이 켜진 한옥지붕들.

어필에서의 시간들 중, 이런 일터에 내려앉은 일상의 행복들로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 법원으로 보호소로 출장가는 길 브이로그를 찍고, 컨퍼런스 발표가 끝나고 ‘다나카’ 포즈로 인증샷을 남기고, 꽃을 오리고 붙여 난민을 지지하는 피켓을 만들고, 유행하는 영화나 책을 보면 어필의 임무나 생각들과 엮어 팟캐스트로 전하는 그런 활동도요. 누군가는 이렇게 일터에서 찾아가는 일상의 행복들이 ‘다들 힘든데 팔자좋은(?)’ 감상이고, 혹은 어필의 저런 창의적인 활동들이 ‘체신머리(?)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라며 비쭉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어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이런 일상을, 또 일을 가볍게 보이도록 하는는 날갯짓이야말로 “심각한” 업무들을 이고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이라는 것이었어요. 이런 비틀거림 속에서 가지는 마음가짐이요.

나의 작은 삶으로, 조금은 먼 정의를 지어가는 비틀거림이 그저 막막한 슬픔 속의 허우적거림이 되지 않도록,

함께 명랑하고 다정하게, 존경과 장난기를 담아 눈을 마주치는 법.

거대하고 오래 된 벽 앞에서, 보다 창조적으로 날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태도.

비틀거림이, 혼란이 아니라 춤사위가 되도록 만드는 것.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이 여정을 마냥 ‘지난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운 것 같아 어필에 참 감사하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비틀거리며, 당신의, 우리의 비틀거림을 응원할게요. 아주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해요.

최종수정일: 2023.02.07

관련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