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공익법센터 어필에 합류한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두 번째 ‘비틀거리며 짓다'를 짓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필은 세 명의 크루분들이 더해졌고, 두 명의 크루분들이 무사히 안식년을 다녀왔습니다. 고대하던 ‘완전체' 어필이 눈 앞에 있는 지금, 그 동안 소셜 미디어와 연간보고서로 말씀 드려온 어필의 기쁜 소식들 중 몇 가지 - 오랜 노력 끝에 승소한 난민 사건 관련 이야기 몇 개를 기념하고 기억하며 기록합니다.
1. 우선 ‘숫자'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2023년 연간보고서에 작년 한 해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으니 2024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작년 한 해 동안의 대한민국 난민인정률에 대한 숫자 몇 개를 적어봅니다. 이 숫자들을 보시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여력이 되신다면 다음의 숫자 4개를 메모리해보시기 바랍니다. 1.5~2%, 108명, 37명, 6명. (이 내용은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통계를 참고하였습니다(https://nancen.org/2397)
2023년 대한민국 난민인정률(해당 연도 심사결정자 수 대비 인정자 비율)은 1.53%입니다. 2022년 난민인정률은 2.04%였습니다. 그러니 1.5 ~ 2% 정도의 인정률로 기억하면 얼추 맞습니다. 정말 낮다는 건 알겠는데, 한 명 한 명의 데이터로 잘 와닿지 않으니 조금 더 숫자를 살펴보겠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심사 결정한 건수는 5,950건입니다. 그 중 심사와 소송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은 108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족결합’에 따라 - 배우자나 부모가 난민으로 인정되어 그에 따라 자동으로 - 난민인정된 47명, 재정착 난민 10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수히 정부의 난민인정절차(RSD)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37명입니다. 즉, 출입국, 법무부가 직접 심사하여 난민으로 인정한 사람들은 37명밖에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나머지는 그의 가족이거나, 아예 정부가 심사하지 않았고 해외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의 재정착 수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행정소송을 통해 난민인정된 사람은 6명에 불과합니다(행정소송에 의한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난민인정서가 나오기까지는 수 개월이 걸리곤 합니다).
2. 난민인정에 있어 ‘불모의 땅'이라는 수사가 과장이지 않은 현실, ‘난민협약 가입국인 한국이 난민들을 보호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라는 평가를 데이터가 그대로 입증하고 있는 현장에서, 어필은 차곡차곡 성과들을 쌓아올려 왔습니다. 2024년 9월까지 22건의 승소, 그 중 13건의 난민인정 판결이 있었습니다.
2024년 상반기 어필이 승소를 기록한 사건들(1심, 항소심 및 상고심 포함)은 모두 12건입니다. 여기에는 4건의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사건(나이지리아, 신장위구르, 이집트)이 포함되어 있고, 튀니지, 러시아, 에티오피아, 카메룬, 중국 국적의 공항 난민신청자들의 사건도 들어 있습니다.
2024년 7월부터 9월에 어필이 승소를 기록한 사건들(1심, 항소심 및 상고심 포함)은 모두 10건입니다. 이 중 9건이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사건(중국, 콩고, 이집트, 나이지리아, 우간다)이었고, 1건이 에티오피아 공항 난민 사건 항소심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국이나 법무부 단계에서 난민인정결정을 받은 사례가 나오지 않았는데(2023년에는 이란과 이집트 가족들의 난민인정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부 단계에서 난민인정받기가 더욱 까다로워진 현실을 방증합니다.
승소 확정을 받아내기까지 항소심 또는 상고심을 거쳐야 하는 사건들이 많기에 아직 가야할 길이지만, 앞서 ‘1.’에서 소개한 숫자들(예컨대 ‘법원을 통한 난민인정 6명’)을 떠올려 보면, 한 건 한 건의 승소는 저희에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3. ‘숫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이만큼이나 성과를 내었습니다'를 말씀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숫자'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필과 사건을 통해 만나는 난민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어필이 이들과 손잡고 어려운 도전들을 헤쳐나간 이야기들이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한 건 한 건에 녹아든 수많았던 고민과 노력들, 그로 인해 감사한 일들을 다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를 핑계로, 오늘은 한 가지 사건만 골라 말씀 드립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난민"4신청자" 사건입니다. ‘앞서 3번의 난민신청이 모두 기각(법원 단계 포함)되었고 4번째 신청에 대해서도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난민 A는 나이지리아 남부 비아프라(Biafra)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온 단체 IPOB (Indigenous People of Biafra)의 한국본부 회원입니다. 나이지리아 체류 당시에는 IPOB의 전신으로 분류되는 MASSOB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였습니다. IPOB 한국본부는 2014년경 설립되었고 A는 2014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창립 초기 멤버이자 열성 회원으로 여러 활동들에 참여하였습니다.
IPOB는 나이지리아 정부로부터 지속적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특히 2017년 9월 정부가 IPOB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서 박해가 보편화되었고, 해외 체류 중인 IPOB 회원들에 대한 박해 사례도 지속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IPOB 한국본부 회원들도 이 박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본국으로 강제송환되면 체포, 구금, 고문, 실종, 초법적 살해의 위험은 물론 법에 따른 처벌, 사회적 차별과 박해, 정부의 감시와 통제에 따른 인권 침해 등 다양한 박해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의 사건 이전까지 한국에서 난민인정된 IPOB 회원은 ‘한국본부 대표'인 ‘킹다비드’밖에 없었습니다. 그조차도 정부 절차로는 인정받지 못했고, 어필에서 조력한 법원 항소심 사건을 통해 난민인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킹다비드'처럼 뚜렷한 직책이나 박해의 증거(그의 가족들도 나이지리아 본국에서 활동하는 IPOB 회원들이었으며 일부 가족을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가 없는 다른 회원들은 난민인정심사의 벽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A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10년 가까이 IPOB의 열성적 회원으로 참여한 자이기에 박해 위험이 뚜렷하였지만, ‘높은 직책'이나 ‘활동 증거'가 부족하다는 문제, 게다가 무려 4번째 난민신청을 하였다는 문제가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토록 여러번 난민인정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사건의 1심과 2심은 모두, “4신청자”임에도, 위 한국 대표인 ‘킹다비드’와 달리 본국에서의 뚜렷한 박해 사실이나 한국 내 조직에서 분명한 지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민인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나이지리아의 국가정황정보와 앞서 난민인정된 ‘킹다비드' 사례 등을 근거로 선입견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었습니다(1심 승소 판결도 빛이 났지만, 피고 항소한 항소심에서 ‘항소기각(1심 유지)’ 판결을 하면서도 18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원고를 난민불인정결정한 처분이 위법한 이유를 설시한 항소심도 놀라웠습니다).
“ … 앞서 본 나이지라아의 국가정황에 비추어 보면, 비록 IPOB에서 주요 직책을 맡지 않고 있는 회원이라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활동 내용과 기간, 역할 등에 따라 나이지리아에 송환될 경우 정부의 학대, 불법 구금 등과 같은 박해의 위험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인정함이 타당하다”
4신청자 난민 A의 이야기는 어필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다른 IPOB 회원들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길이 조금 더 열릴 것 같습니다. 좁디 좁은 난민인정률은 뒤로 미뤄두고 ‘난민신청을 반복하여 난민제도를 악용한다' 라고 낙인 찍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2024년 소송을 통해 난민인정 받은 자 1인'만으로 단순 환원할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Outro] 오늘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승소도 그렇지만, 사실 ‘패소'한 사건들에 ‘널리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어필이 어떻게 사건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하였으며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높은 벽을 느끼고 패소한 이야기들 속에, 더 많은 알릴거리들 - 앞서 숫자로 짚어보았던 그 거친 장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세상은 나아집니까?’
‘글쎄요. 그러나 어떻게 세상이 나아지고 있고 어떻게 나아지고 있지 않은지, 때마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켜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이종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