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4년 12월] #62. 사랑을 구워내다 - 손연우 인턴

2024년 12월 4일

제가 지난 3개월간 어필에서 인턴을 하면서 관찰한 결과, 저희 사무실 키친은 하루에 두 번 같은 시간에 분주해집니다: 출근 직후 아침과 점심 직후입니다. 아침 챙길 시간 없이 바쁘게 출근하신 팀원들이 간식 헌팅하러 키친을 왔다 갔다 하곤 합니다. 운이 좋은 날에는 빵 아니면 떡, 안 좋은 날에는 과자와 견과류를 줍줍 먹어가며 점심시간까지 버팁니다. 점심 직후에 키친이 또다시 분주해집니다. 구독자분들도 디저트 배는 따로인 것… 아시죠? 저희는… 그렇습니다.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뒤, 달달구리한 맛을 찾으러 나서는 어필 사람들은 키친으로 향합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책상으로 돌아갈 때가 종종 있죠. 그래서 베이킹이 취미인 저는 어필 사람들에게 든든한 아침과 달달한 오후를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각종 빵과 디저트를 구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컨 포테이토 포카치아와 페스토 선드라이토마토 크림치즈

사실 저의 베이킹은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보여주기식 베이킹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베이킹. 보여주시기식 베이킹은 주로 화려한 맛에 자극적인 맛을 갖추고 있죠. 친구들과 지인들이 "우와!"하고 감탄할 만한 비주얼과 맛을 목표로, 색 조합과 데코에 신경 쓰고 설탕과 버터를 팍팍 넣어서 호불호 없는 빵과 디저트를 주로 선물합니다.

반면으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베이킹을 할 때는 결과물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투박하고 심플해 보입니다. 누가 봐도 건강한 맛이 날 것 같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덜 화려하고 더 건강하더라도, 맛은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정성이 들어갑니다: 밀가루 대신 오트를 곱게 갈아 오트가루로 만든 겉바속촉 머핀. 설탕 대신 바나나를 으깨 넣고 초코칩 대신 블루베리와 직접 내린 에스프레소를 투하한 바나나빵. 버터 대신 해바라기씨 버터를 듬뿍 넣어 만든 고소한 스니커두들. 건강하지 않은 재료를 최대한 덜어내고 제 시간과 정성을 더해, 건강하면서도 엄청 맛있는 것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게 사랑 아닐까요? 첫입에 단맛과 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자극적인 맛은 아니더라도, 너무 달지도 너무 느끼하지도 않아서 계속 손이 가고 재료 본연의 아름다운 맛을 선보이는 건강한 베이킹입니다.

저는 가족 말고 유일하게 건강한 베이킹을 해드리는 분들이 바로 어필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저에게 어필이 저에게 소중하다는 뜻이겠죠? 저는 건강한 음식이 기운을 준다고 믿습니다. 아침에는 끼니로 먹어도 속이 편할 수 있도록 기름진 버터를 다른 재료로 대체하고, 오후 디저트로 먹더라도 혈당스파이크에 의해 근무 중 졸리지 않도록 설탕을 감소하는 등 저의 베이킹 과정 속 작은 노력들로 인해 열일하시는 어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해바라기씨 버터 스니커두들(SunButter Snickerdoodles)

저에게 크루분들은 쉴 새 없이 달리는 히어로들로 보여요. 그곳이 포항이든 제네바든 취약한 사람들을 돕거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크루분들의 열정에 항상 감동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필 사람들을 선망하되, 어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저희 인턴들을 너무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환영하셨기 때문입니다. 근무가 너무 힘들지는 않은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했고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물어봐 주시며, 저희 인턴들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시는 것을 느끼며 저는 크루분들께 마음을 빨리 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크루분들이 저희 인턴들에게 진정으로 멘토가 되어주려고 하시는 모습들이 가장 멋져 보였습니다. 어느 멘토라도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해 줄 수 있지만, 저희가 망설임 없이 물어볼 수 있도록 진심으로 질문을 환영해 주시며 편하게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어필의 크루분들은 저희 인턴들에게 최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십니다. 너무나도 존경하지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크루분들을 통해 제가 꿈꾸는 제 미래의 모습을 그리게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필의 크루는 남을 돕고 의미 있는 일들로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해 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는 멋진 어른들이십니다.

에스프레소 바나나 브레드

제가 지난 3개월간 어필에 구워간 빵과 디저트들의 사진들을 훑어보니, 갈색과 베이지색 등 건강한 색 밖에 안 보이네요. 자극적인 맛과 알록달록한 비주얼을 가진 디저트는 아니더라도, 제가 구워가는 것마다 감탄해 주시고 남김없이 순삭해주시는 어필 사람들의 모습 보면 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따듯해집니다.

제가 인턴을 시작한지 3개월이 흘렀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홀딱 지나가 버렸네요.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네요: 인턴 한 달 차 됐을 때 인턴들끼리 처음으로 식사하며 급 친해진 계기가 되어 행복했던 저녁; 첫 난민 면접 동석한 날 인천 외국인청-출입국이 아닌 인천공항에 있는 외국인청-출입국 사무소로 잘못 갔다고 인지한 후 아찔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순간; 릴리와 나나가 내리는 고소한 커피 향, 키미가 내리는 싱그러운 쑥차 향을 맡으며 사무실 창밖으로 단풍으로 빨갛게 물든 인왕산과 국악산을 보면서 힐링 되었던 가을 아침들. 즐겁고 긴장되고 활기차고 잔잔하게 행복했던 지난날들을 모두 다 간직하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기간 얼마나 더 많은 값진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남은 3개월간 더 건강하고 더 맛있는 레시피를 많이 많이 도전하고 싶네요. 그 결과물들을 어필 사람들과 함께 맛있게 나눠 먹고 힘을 내어 계속 활발히 활동할 생각에 설렙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연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7기 인턴 손연우(해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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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