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4년 11월] #61. 나는 어필에서 일하고 싶다. - 김민지 변호사

2024년 11월 6일

저는 어필에서 실무수습 변호사로 일하고, 11월부터 어필 크루로 함께하게 된 김민지입니다. 오래 전부터 일기장에 적어두고 꿈꿔왔던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지난 6개월 동안 어필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면서도 늘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어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5년 전 일기를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여전히 어필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2019. 7. 22.에 쓴 일기>

1. 취약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제 꿈은 인류학자였습니다. 그때 저는 현지조사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글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도 ‘인류학자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는 채로요,

어필에 처음 출근했던 날 어필이 하는 일에 대한 소개를 듣고, 제가 그동안 막연히 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어필은 이미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갇혀있는 전국의 외국인보호소와 공항 내 출국 대기실에 찾아가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수사기관에서의 조사에 동석하고, 기업의 팜유 플랜테이션과 광물 채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매년 인도네시아 섬에 다녀오는 어필 크루들을 보았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을 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당한 일이 일어난 곳에 찾아가 취약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필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도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2. 알아야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어필은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스터디를 합니다. 난민법 교과서도 읽고, 책도 읽고, 영화도 봅니다. 저는 그때마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을 접합니다. 얼마 전에는 <기쁨의 도시 City of Joy>(2016)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는데, 강간이 전쟁과 분쟁광물 채취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또 소송을 위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을 작성할 때마다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을 봅니다. 어필이 수행하는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에서는 원고가 난민인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적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국가정황정보를 서면에 담게 됩니다. 이때 난민 당사자의 말만 듣고는 “에이, 설마...?” 했던 끔찍한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각종 국제기구의 보고서와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하는 일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로 온몸을 덮는 파란색 부르카를 다시 쓰게 된 여성들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미얀마 군부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어필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부끄러움을 느낄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알아야 하지만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싶습니다.

 

3. 마음을 담아 일하고 싶습니다.

지난 여름 어느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오랫동안 난민들을 도우며 수많은 사건을 수행하셨던 변호사님의 옆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변호사님이 수행하셨던 난민인정자의 영주권 취득 요건인 생계유지 능력 감면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서울행정법원 2024. 7. 12. 선고 2022구단72871)의 판결이 선고되는 날이었습니다.

학술대회 발표가 진행되는 도중에 앞자리에 앉은 다른 변호사님으로부터 입모양과 표정으로 ‘패소’라는 결과가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를 전달받은 변호사님이 고개를 젖히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슬퍼보였습니다. 오랜 경력과 많은 경험을 가지게 되면 무심하게 일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변호사님의 모습을 옆에서 힐끔힐끔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어필은 난민들이 집을 떠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전쟁의 참혹함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외국인이 겪는 부당한 처우로 인해 답답한 마음을 삭이며 그 마음을 서면에 담아내고, 단지 승소판결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뢰인의 삶이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어필을 닮아 저도 맡은 일에 마음을 담아 일하는 법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4. 갇혀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청주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 처음 가보았던 날이 기억납니다. 출입국관리법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여 형의 집행이 종료된 후,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강제퇴거명령을 받아 출국해야하지만 고향은 아직 전쟁 중이어서 돌아갈 수 없기에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져 구금기간의 제한도 없이 갇혀있는 M씨를 만났습니다. 외국인보호소의 높고 하얀 벽을 지나 M씨를 만나고 온 날, 그 앞에 집을 짓고 살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보호소를 떠나오면 그곳에 외국인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잊어버릴 수 없도록 가까이에 살면서 자주 면회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천공항 출국대기실 안에도 사람들이 갇혀있습니다. 국내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난민인정 신청을 하였는데 그 신청에 대한 심사 자체를 거절당하여 난민인정심사불회부결정을 받고 몇 달 째 공항에 갇혀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변호사신분증이 있으면 공항 내 출국대기실에 들어갈 수 있고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 변호사신분증은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티켓을 잘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갇혀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곧장 시원한 대답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매번 그들이 풀려나도록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어딘가에 갇혀있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그래서 늘 갇혀있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들의 불편과 고통을 전해들으며, 갇혀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주구금 제도 개선을 위해 힘쓰는 어필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어필이 오랫동안 해온 것처럼, 저도 취약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을 뜨고, 맡은 일에 마음을 담고,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어필에서 일하고 싶다고 적었던 몇 줄의 일기가 현실이 된 것처럼, 어필을 닮고 싶다는 이 바람도 어느새 진짜 제 모습이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필에서 더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김민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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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