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필 뉴스레터 구독자님,
어필에서 일을 시작한 지 5개월째 처음으로 구독자님께 인사를 건넵니다. 저는 26기 인턴 ‘융'입니다.
작년에는 부지런히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일을 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던 동시에 자기검열이 극에 달했던 시기임을 회고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지칠 대로 지친 저는 올해 어필에서의 근무를 시작하고 근심이 컸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 채 그저 안국역 1번 출구 계단을 간신히 밟아 올랐습니다. 사무실에서 당직을 찾는 전화가 울릴 땐 한숨이 나왔습니다. 대개 출입국보호소에 구금된 난민분들이었습니다. 저로서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저 당신의 수화기 너머 내가 듣고 있다고, 눈물 섞인 호소에 건조한 목소리로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말의 비겁함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여러모로 타자와 분리하여 살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다르고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서면으로만 접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 난민을 실제로 만났을 때 활자 밖 그녀의 삶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싸우는 그녀를 마주하며 저를 보았습니다. 정상성의 기준에서 밀려났던 경험, 폭력을 생존한 경험 등 그녀와 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의미가 부여된 고통은 사람을 파괴시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구조적인 고통을 그녀와 공유하는 건 사실이지만 제가 누린 특혜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비장애인, 중산층, 시스젠더 여성인 저는 차별의 수혜자이기도 하니까요. 무엇보다, 그녀를 비롯한 대다수 난민분은 ‘난민 인정률 2.4%’ 이라는 현실에 부딪힙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당할 위험을 안고, 희미한 가능성을 바라보며 한국에서 지난한 절차를 거치는 난민분들의 힘듦을 저는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다만,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난민분들과의 만남은 삶의 의미를 제고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 기수 인턴분들, 어필 변호사님들이 “실제로 만나면 다르다, 경험해 보면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의 부박한 마음이 만들어낸 불안을 걷어내고 보니, 제 앞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시대에서 연대를 말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 불안과 혐오가 팽배한 사회를 살아가며 무기력을 학습한 탓입니다. 애쓰시는 분들이 많지만, 여전히 사회 구조적 차원의 변화는 쉽게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필에서 일하며 생각이 바뀐 게 있다면 바로 저 자신에 대한 것일 겁니다. 불의 앞에 저는 한없이 작아 보였는데, 시선을 타인으로 환기하니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난민분 이야기 경청하기, 눈에 불을 켜고 공신력 있는 자료와 판례 찾기, 신속하게 정확한 정보 전달하기 등… 저의 노력이, 난민분이 삶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의 작은 불씨가 된 경험은, 어필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의 뿌리가 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타인과 사회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책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이자 난민, 이주노동자 출신인 고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우리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자문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성원권이 자본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등 혐오의 논리로 부여되지 않는 사회, 몫 없고 밀려난 자들이 존엄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저는 저의 위치에서 더 공부하고, 듣고, 쓰겠습니다. 어필이 저에게 준, 환대라는 생생한 감각을 기억하면서요.
구독자 여러분, 어필과 동행하며 어필이 만들어갈 변화를 기대해주세요. 구독자님들이 건내는 연대는 난민분들과 변호사님들께 비틀거려도 다시 설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때로 무력하고 우울하고 화가나면 주변의 타인 혹은 어필에게 곁을 내어 주세요. 제 경험상, 내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구독자님들 그리고 어필 여러분,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무탈하게 지내다가 또 만나요.
용기와 연대를 보내며,
융 드림
(공익법센터 어필 26기 인턴 조혜윤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