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3회 난민통역캠프에 다녀왔습니다

2025년 5월 15일

2025년 5월 14일 호모인테르가 주최한 제3회 난민통역캠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저는 MBTI가 INTP인 사람답게 계획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목표에 따라 수단을 찾기보다는 관심 분야다 싶으면 그냥 일단 기웃거리는 스타일입니다. (그냥 인생 자체가 브레인스토밍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오늘 다녀온 호모인테르의 난민통역캠프도 통번역에 관심이 있다보니 신청은 했으나, 정확히 뭘 알고 싶은지, 변호사로서 어떤 부분을 접목시키고 활용할 수 있을지 제 안에서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고백건대, 안되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는데, 약 180명이 신청하여 6:1의 경쟁률이었다고 합니다. 수강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위하여’라는 문구만 보고도 이 교육은 즐거울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최은 보호담당관님께서

난민심사제도 및 난민심사과정에서의 통역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난민 관련 제도에 관한 개괄이었기 때문에 다른 세션에 비해 익숙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왜 통역인이 제도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로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난민신청인이 위법 행위를 한 경우라도, 우리 난민 보호 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불법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맥락을 알고 통역하는 것과 모르고 통역하는 데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강연 말미의 case study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다만 앞으로 나와 역할극 형태로 발표해야 하는 것이 조금 괴로웠습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이향 교수님께서

통역의 이해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질문-응답 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통역에 관심이 많고 심지어 이미 통역 경험이 있는 다양한 분들이 계셨기에 심도 있는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입intervention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통역인의 중립성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통역을 회의 통역conference interpreting과 지역사회 통역community interpreting이라는 두 부류로 나누고 난민 통역이 후자에 해당한다는 설명도 흥미로웠는데, 관련하여 다른 참가자 분의 소감이 인상적이어서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내가 했던 게 지역사회(커뮤니티) 통역 자원활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줄줄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를 얻었다.

ISO13611 Guideline

경험자 분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경험과 이론을 모두 갖추신 교수님께서 실질적인 답변을 해주셨기에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세션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변변찮지만 저의 노트테이킹을 아래에 첨부하니, 관심 있으시면 일람을 권합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호모인테르의 박재윤, 오윤현 대표님께서

난민통역의 특수성 - 통역인의 역할과 윤리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통역인의 3대 윤리인 중립성, 정확성, 비밀유지 의무 중 중립성을 몸으로 이해하는 활동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이리저리 무게중심을 옮겨 가면서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자세로 서 있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른 참가자 중 두 명을 마음 속으로 정하고 그 두 명으로부터 계속 동일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하였습니다. 이때 사회자가 제시하는 속도에 따라 천천히 이동하기도, 빨리 이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한 두 사람으로부터의 동일 거리, 즉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제일 처음에 느꼈던 자신의 편안한 무게중심 또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상 제약으로 인하여 나머지 두 가지 윤리는 몸으로 이해하기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꼭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교육이 끝난 지금도 사실 ‘변호사로서 어떤 부분을 접목시키고 활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곱씹어 볼만한 부분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첫째, 난민면접은 난민신청인까지 포함하여 통역인과 심사관이 하나의 ‘팀 워크’를 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난민면접은 극도의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팀 워크의 열쇠는 심사관이 쥐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래도 심사관을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팀 워크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난민을 조력하는 사람도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통역인의 개입은 상존할 수밖에 없고, 더 정확히는 필수적이고, 다만 그 범위와 방법이 문제될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입의 문제는 통역인의 중요한 윤리 중 하나인 중립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논의되는 주제이고, 실제로 이번 난민통역캠프에서도 관련 질문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개입이 필요한가’ 여부에 논의가 머물러 있어서 시기상조겠습니다만, 해외에서는 난민면접과 같이 극도의 권력 불균형 상황의 경우 개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옹호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고 합니다. 즉, 통역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약자 쪽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진정한 평등은 합리적 차별에서 나온다는 식의 논의가 공익인권 분야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역의 맥락에 적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진지하게 통번역가를 꿈꿨었는데, 지도교수님께 진로 상담을 가서 통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너가 직접 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왜 남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려 하느냐.’라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교수님의 말씀이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통역인의 개입에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것을, 즉 교수님처럼 통역인은 단순히 전달자에 불과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유익했고 또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괜히 6:1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하시는 것같으니 꼭 다음 기회를 노려보시길 추천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마음 쓰는 곳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늘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곤 합니다. 교육이 모두 끝난 후 원하는 사람은 난민통역인풀에 등록할 수 있었는데, 제 외국어 능력에 대한 정확한 자기평가에 근거하여 저는 등록하지 않/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난민-통역인-심사관 삼자 대화/협엽을 난민이 잘 해내도록 조력할 수 있을지 저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겠습니다. 

(김희진 변호사 작성)

첨부문서

최종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