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 지난 4월 13일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개최한 전례없던 ‘난민협약 공개강좌 – 누가 난민인가’는 많은 분들의 열띤 참여로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강의 전날까지 총 51명에 이르는 분들께서 수강신청을 해주신 까닭에 최초 공지와 달리 어필의 공간사이多가 아닌 서울시 NPO 지원센터로 장소를 변경하여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난민협약상 난민의 정의에 대해 해석론과 한국 및 외국의 판례 설명까지 함께 4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의에는 난민활동가뿐만 아니라,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모든 참여자들의 많은 호평이 이어졌었습니다.
난민협약 특강 수강 후기
난민협약 특강을 들은 감상을 수강생 중 한분이셨던 김지훈 변호사님께서 따뜻하고 감동이 살아있는 문장으로 남겨주셨습니다.
2011년 겨울, 어느 길을 가든 담담하리라 맘을 먹었지만‘ 로스쿨 입시 발표를 앞두고 실패목록에 한 칸이 더 늘어난다면 스스로를 쉽게 용서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강원도의 한 수도원을 찾았고 2박 3일간 노동과 기도로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마지막 날 짐을 꾸리고 남는 시간에 서재에 들렀습니다. 탁자 위에 재생지로 만든 투박한 책 한 권이 놓여있었는데 내용은 난민과 그들을 돕는 ngo 활동가의 이야기였고 흥미로운 내용에 매료되어 빨려들듯 읽어 내려갔습니다. 상경해서 낙방소식을 들었지만 걱정했던 것처럼 절망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된 난민을 돕는다는 ‘그곳’에 달려가 인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두 달여 그곳에서 소송지원 업무를 하며 이방인들의 고향에서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 머나먼 타향에서의 간절한 소망들을 녹여내어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무척 흥미롭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사법시험, 로스쿨 입시준비로 보냈지만 결국 실패로 마무리되려는 그 암담한 순간, 제 처지는 오갈 데 없는 난민과도 같았고 ‘진짜’ 난민을 만나고 도우면서 저 역시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추위가 한풀 꺾일 때쯤 저는 추가 합격 통지를 받고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강연이 있던 토요일은 변호사시험 결과 발표 다음 날이었습니다. 전날의 긴장과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고 로스쿨 3년을 갈무리하면서 제가 마주한 것은 또다시 ‘난민’이 된 것입니다. 황사 없이 맑은 하늘, 봄꽃이 만발하여 놀러 가기 좋은 주말 오전에 작은 강의실에서 시작된 강의는 한 시간 이후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누가 난민인가?’ 라는 원론적인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 강의는 4부로 나눠서 난민협약상 난민의 개념을 분절하여 각각 ①번역상의 문제점 ②관련 쟁점 ③한국판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1부에서는 난민협약상 난민 정의에 대한 해석의 원칙인 협약의 목적과 취지에 대한 설명과 ‘국적국 밖에 있을 것’이라는 요건과 관련해서 현지 체재중 난민인정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체재중 난민의 개념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거주국에서의 활동 의도를 신빙성 판단에 부정적 요소로 고려하는 판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2부에서는 ‘협약상의 사유로 인해 박해받을 우려’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양성평등, 성적 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들을 통해 난민 문제가 인권의 보편적인 이슈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부에서는 박해의 가능성에 대한 입증문제를 다루면서 현재 판례가 난민신청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있어서 형식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4부에서는 국적국의 보호 부재 요건과 관련하여 국적국에 있을 때 정부에 대해 보호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장을 배척한 것과 같이 협약의 목적과 취지, 그리고 현실을 무시한 판례가 많고 대안적 국내피신 인정여부에 대해서도 소수의 판례를 제외하고 형식적이고 성긴 논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각각의 요건마다 판례는 미분화되거나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여 난민 인정 범위를 축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결국 난민법을 제정할 당시 난민협약의 목적과 취지에 따라 난민 개념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규정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념과 이론에 대한 정치한 설명과 체계적인 비판이 주된 내용어서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도 있었지만, 예상 밖으로 아무도 졸지 않아 강연자가 당황(?)할 만큼 흥미로운 강연이었습니다. 참석자의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던 김종철 변호사님의 실력에 감탄하였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도 마다치 않는 어필 변호사님과 인턴분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아내와 종로길을 걸었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가볍고 산뜻해진 옷차림을 한 사람들 사이에 파커를 입은 흑인 사내 둘이 지나갑니다. 문득 그들의 살아온 삶의 여정이 궁금하고 말을 건네고 싶어집니다. 로스쿨이라는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오는 순간 다시 만난 ‘난민’은 가슴 한쪽에 묻고 지냈던 작은 불씨를 살려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