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자말 라시드의 이야기, 난민이란 누구인가

화성보호소에서 만난 자말 라시드 : 지구를 반바퀴 돌아 한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B국으로, B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어필이 자말 라시드(가명)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2014년 3월 15일 재단법인 동천의 Relate 난민교육 장소에서였습니다. 어필은 계속해서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의 조력에 주목하고 있었기에 그 무렵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는 A국에서 오신 난민분 4분이 송환대기실에서 입국치 못하고 계셨던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 3분이 성공적으로 입국하셨다는 소식을 새롭게 듣게 된 것입니다. 이후 네 분 중 한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수소문하던 끝에, 그 분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화성외국인보호소로 곧장 이송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입국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발령하여 구금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 어필은 아랍어 통역 자원봉사자와 함께 급히 화성보호소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자말 라시드의 이야기는, 난민이란 어떤 존재들인가, 어떻게 국가의 경계 사이에서 버림받고 있는가를 명확히 깨닫게 해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 자말 라시드를 처음으로 만난 날

나이가 지긋한 자말 라시드는 A국에서 정치적 의견으로 인한 명확한 난민사유가 발생하여 정부로부터의 박해가 명백하게 되자 도저히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머물수 없다는 생각에 육로를 통해 인접국인 B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거의 백만여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육로로 밀려든 B국에서는 반이민, 반난민 정서가 심해져 난민들을 향한 범죄와 협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난민들은 범죄자고, 그 나라 경제를 좀먹는 사람들이라는 비난과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B국에서도 계속 거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된 자말 라시드는 가장으로서 병약한 아내와 자녀들을 놓아둔 채, 정상적인 여권연장을 국가에 돌아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브로커를 통해 여권기간을 연장한 후 난민제도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과거에 단기거주 경험이 있는 유럽의 C국을 향해 먼저 먼길을 떠났습니다. C국에서 난민인정을 받아 가족을 데려오는 쉽지 않은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브로커가 알려준 안전한 노선은 매우 복잡한 노선이었습니다. B국에서 C국으로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방향에 있는 D국으로, 그리고 D국에서 한국을 거쳐, C국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아가는 노선이었습니다. B국에서 곧장 온 사람들을 난민으로 간주하여 C국에서 입국이 잘 안될 수도 있다는 판단때문이었습니다.

자말 라시드는 B국에서 D국으로 가서 입국한 후 다음날 출국, 브로커가 보내준 e-ticket을 이용하여 D국에서 한국에 도착하여 입국한 후 다음날 다시 최종목적지인 C국으로 향하려는 찰나, 브로커와는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자말 라시드는 결국 스스로 티켓을 새로 구매하여 C국으로 나가기 위해 출국하려하였으나 바로 그때, 입국심사시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위조여권이 출국심사시 발견되어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받아 조사기간동안 구금되었습니다. 그는 ‘난민신청을 위해 C국으로 가야한다’라고 절규하였음에도 다시 최초 탑승지인 B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가슴아픈 것은 자말 라시드의 국적국이 아니라 잠시 피난온것에 불과한 B국출입국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자말 라시드에 대한 입국을 불허하고 다시 탑승지인 한국으로 송환시켰다는 것입니다. B국도 자국민도 아닌 난민을 굳이 입국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세계를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한국에 도착하였으나, 한국에서는 다시 한바퀴 돌려보내 B국으로, B국은 다시 난민을 입국시키지 않겠다며 돌려보내 한국으로 다시 돌려보내진 상황이었습니다. 

▲ 애초에 계획했던 경로와, 그간의 연속되는 송환과정들

자말 라시드는 난민을 받지 않고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국가의 엄혹한 국경관리 속에 이렇게 서로 버려지면서 인천공항에 다시 도착하였습니다. B국을 떠난지 2주일동안 그는 비행기 안에서, 구금장소에서, 각국의 출입국관리공무원의 냉담한 얼굴만을 마주대하며 지냈습니다. 비행기에 내리면서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그는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가서 외쳤습니다. “나를 C국으로 보내주세요. 제 아내는 아프고, 저는 가족을 위해 난민신청을 해야합니다.”  

  한국 도착과 구금, 지난한 난민신청

C국으로 갈 수 없음을 알게 된 자말 라시드는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가 명확했으므로 부득이하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선례가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했던 출입국 당국의 선택은 자말 라시드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고 그 안에서 난민신청절차를 진행하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속에서 그는 정확하게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위법하고, 잔인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랍어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그는 인천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왜 자기가 한국의 화성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구금되어 앞으로의 처분을 기다리게 된 그는 같은 보호실 안에서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누구와도 대화를 잘 할수도 없는 채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B국을 떠난지 거의 한달 반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어필의 변호사와 능숙한 아랍어 통역 자원봉사자를 우연히 만난 자말 라시드는, 처음으로 그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털어놓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받아 이해하게 된 뒤 눈물을 쏟았습니다. 

  해제되어 난민으로 확인되기까지

믿기 어려운 가슴아픈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구금의 경위를 확인하던 어필은 보호명령서의 발부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하여 법무부장관에게 구금의 해제를 구하는 보호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였고, 다행히도 한달여가 더 지난 이후 자말 라시드는 어필의 조력으로 다행히도 구금에서 해제되어 밖에서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A국 출신 난민신청자들 모두에 대해서 그렇듯 자말 라시드는 구체적인 심사 없이 A국 출신자들이 주장하는 박해의 위험은 만연히 내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들에 불과하다며, ‘쫓겨나지 않을 뿐, 아무런 사회보장이 부여되지 않고 본국 외 다른 곳으로 출국할 자유도 없는 불안정한 체류자격인’ 인도적 체류지위(Humanitarian Status)를 얻은채 난민불인정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드디어 올해 4월초 이의신청 단계에서 원처분을 취소하고 난민으로 확인되게 됩니다. 그는 여태까지 한국에서 600여명의 A국 난민신청자들에게 모두 인도적 체류지위만이 부여되었으나, 단 3명만이 난민지위를 부여받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된 것입니다.

자말 라시드는 한국에 도착한지, 가족을 만날 수도 없은 채 한국의 국경에 갇혀서 지낸지 1년이 넘어, 아프다는 소식만 듣고도 발만 동동 구르며 먼 곳에 있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이겨내고, 드디어 난민의 권리를 누리고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가족들도 한국에 와서 함께 머물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어필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것을 축하받는 자말 라시드

난민이란 누구인가 – 공간에 대한 적법한 권리 없이 경계에서 소멸하는 또다른 우리들

자말 라시드의 이야기는, 지난한 여러 법적 조력 끝에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던 기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 난민이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단지 가족의 안녕을 위해 가장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피신처를 찾기 위해 먼길을 용감하게 떠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점차 엄혹해지며 난민들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엄혹한 국경관리의 장벽속에 그는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서로 배제되어,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에까지 밀려왔고, 영문도 모른채 구금되었고, 한국에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가족을 다시 만나지도 못했고, 난민임이 인정되지 않아 거부된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았다가 1년여가 지나서야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인받게 된 것입니다. 자말 라시드가 해왔던 선택은 누구라도 같은 처지에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결정이 아니었나요? 난민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또, 난민의 이야기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난민들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 박해의 위험을 당하였는지 여부만 다를 뿐 여전히 존엄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때론 언론에서 먼곳의 국제분쟁을, 난민들의 발생을 호들갑스럽게 다루고, 많은 시민들 역시 안타까운 시선으로 난민들에게 연대를 표시해주시기도 하고, 이들을 돕는 국제기구, 커다란 단체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난민들은, ‘먼곳’의 뉴스의 대상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이웃으로 등장할 경우 그들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달라집니다. 국가로부터는 난민으로 인정되기 전까지 ‘불법’한 존재로, 사회로부터는 배제당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거나, 경멸과 불온하다는 낙인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진공의 공간에서 그들은 그렇게 소멸되고, 때론 소비됩니다. 

▲ 영화 Fury에서 독일군 장교들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한 장면

난민들에게는 아무런 공간이 없습니다. 세계대전이란 재앙을 야기한 구호 중 하나가 ‘생활공간(Lebensraum)의 확보’였던 것처럼, 자원이 한정된 사회에서 ‘공간’을 소유 또는 점유할 권리는 여타 개별적 권리보다도 심원한 위상을 갖습니다. 선주민과 이주민사이의 관계에서는 더욱 독특하게 작용합니다. 개별적인 ‘공간’은 이주민들과의 관계에서는 갑자기 땅의 총합인 ‘영토’를, 또한 영토의 지배주체인 ‘국가’를 호출하고, 그 주인으로서 상상의 통일체인 ‘국민’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소위 ‘우리 땅’에 들어왔으나 우리 땅의 주인이 아닌, 우리 땅을 소유하거나 점유할 권리가 없이 잠시 표류하는 존재인 ‘비국민’인 이주민들은 이방인으로서 적대되거나, 주인으로서 종에게 베푸는 시혜적이고 제한적인 환대만을 받게 됩니다. ‘국가’, ‘국민’, ‘영토’의 근대국가 요소의 틀이 견고하게 짜여져 작동하는 한 이주민들은 선주민들에게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남의 땅에 들어왔으면 ‘객’답게 굴어야지 선을 넘으면 안된다”라는 ‘공간’에 대한 사고는, 인종간 상대적 위계를 생산하는 인종주의보다 오히려 더 한국사회에서더 강력하게 이주민들에게 적대와 무시의 감정을 생산하는데 크게 작동하는 근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세계의 어느 땅 한 자락에서도 누구도 난민들을 환영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공유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난민들이 점유할 권리가 존재하는 ‘공간’은 없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땅도, 머물 땅도 없는 경계인들이며, 경계에서 사멸하는 존재들입니다. 경계속에서 언어, 문화, 사회, 제도적 장벽을 넘어가며 홀로 버텨야 하는 난민들. 그들은 우리 곁에 출현한 것만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연에 의해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았을 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자말 라시드의 이야기, 그 어느나라에서도 점유할 적법한 공간 없이 배척되었던 그의 이야기는, 난민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들에게 어떤 연대와 옹호가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일 변호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