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계지식포럼 UNGC 파트너 세션 <UN ‘기업과 인권이행 지침’ 10 주년과 ESG>에서 김종철 변호사는 “ESG라는 삽으로 죽은 CSR을 파내지 마라”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아래 그 토론문 전문을 싣습니다.
–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나오는 사진은 제가 인도네시아에 가서 찍은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팜오일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플랜테이션의 규모를 다 합치면 서울시 면적보다 큽니다. 제가 오일 팜 플랜테이션에 가서 발견한 것은 한국 기업들이 선주민의 생존권 침해, 토지강탈, 맹독성 농약 사용, 아동노동, 열대우림 파괴, 인권 옹호자에 대한 범죄화와 같은 전형적인 인권 침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권 침해에 연루된 한국 기업들은 지난 십 수년 동안 열심히 CSR 보고서를 펴내는 대기업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하면서 CSR 논의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기업의 인권 침해 관행을 개선하는데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을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GP)이 채택된 지 10년이 되는 해에 UNGP의 이행이 아니라 ESG 확산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ESG의 유행은 환영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ESG의 ‘소셜S’이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구체적이고 규범에 근거한 ‘인권 존중 책임’이 바이패스(bypass)되고, 죽었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논의가 좀비처럼 살아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ESG가 그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저는 오늘 우선 기업을 대상으로 ESG의 핵심은 인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뒤 이어 정부를 대상으로 ESG 확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UNGP 이행이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ESG의 핵심은 인권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저는 4가지 구체적인 제언을 하고 싶습니다. 1) 첫 번째는 우선 ESG의 소셜(S)은 기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S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이란 한 마디로 기업이 자신의 사업과 공급망에서 부정적인 인권 영향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연루가 확인되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기업은 하지 않아도 되는 무엇을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적 공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인권 영향에 연루되지 않고 연루가 되었다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여기서 말하는 인권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으로 매우 포괄적이라는 것입니다. 올해 산업부에서 ESG 지표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S에 해당하는 지표를 보면, 인권이 근로환경, 지역사회, 법규준수 등과 병렬적으로 들어가 있고, 인권 지표의 세부 내용으로는 인권정책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기업과 인권에서 말하는 인권을 굉장히 좁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ESG의 S팩터의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기업이 인권에 관한 상당주의의무(HRDD)를 어떻게 이행했는지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정부에 대한 제언입니다. 정부는 ESG을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촉진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ESG에 대한 관심은 UNGP 이행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도 4가지 제언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우선 UNGP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나라가 UNGP를 이행하기 위한 독자적인 NAP를 만들었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독자적인 NAP가 없습니다. 내년에 새로 NAP를 제정할 때에는 반드시 UNGP를 이행하기 위한 독자적인 NAP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2) 두 번째는 의무적인 비재무정보 공시에 관한 것입니다. 투자자가 S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제대로 평가를 해야하고,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시민사회가 기업에 대한 평가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에 대한 평가와 그 평가에 대한 감시는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비재무정보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비재무정보 공시의 범위와 내용이 문제인데 적어도 공시를 통해 기업이 어떻게 HRDD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져야겠지만,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규모가 큰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와 관련해서 어떻게 HRDD를 이행하고 있는지 공시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구제 절차에 관한 것입니다. 기업의 인권 침해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비사법적인 구제수단이 OECD가이드라인에 의해 설치된 NCP에 specific instances라고 하는 진정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NCP는 한 마디로 좌초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NCP에 대한 개혁이 시급합니다. 4) 마지막으로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공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에 있어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모든 공기업을 대상으로 HRDD를 할 것을 권고를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공기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자산 규모가 큰 공기업들 중에 HRDD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인권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기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권영향평가를 한 공공기관도 인권 위험이 없거나 낮은 사업을 일부러 선택해서 인권영향을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공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과 관련해 다른 기업들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공기업의 HHDD이행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ESG논의가 CSR의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ESG에서 S의 핵심은 인권이라는 점과 ESG 확산은 UNGP 이행을 통해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을 한국의 맥락에서 8가지 구체적인 제언을 하면서 강조하였습니다. (김종철 변호사 작성)
*세션 전체를 담은 비디오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