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선원 이주노동자 제도 개선 권고

2021년 10월 8일

지난 9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내린 “선원 이주노동자 모집 과정에서 공공성 강화 및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권고”가 발표되었습니다. 바로가기

인권위의 권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휴식시간 기준과 합리적 근로조건이 법률에 의해 보장되도록 관계법령 정비
  2. ILO 제188호 어선원 노동협약 비준 추진
  3. 선원 이주노동자의 모집 및 고용 절차를 공공기관에서 전담하는 방안 추진
  4. 임금에서의 차별 철폐를 위한 법 개정
  5. 임금유보/체불, 신분증 압수 관행, 외출금지 등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선원근로감독관 확충 등 선원근로감독 강화
  6. 인권교육 강화 및 권리 구제 절차 강화

법률로 정한 근로조건 미적용 실태와 개선방안

‘선원법’과 ‘외국인선원 관리지침’에 따라 20톤 이상 연근해어선과 원양어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근로관계에는 실질적으로 수협중앙회의 ‘어선외국인선원 운용요령’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임금 직접 지급 원칙에도 불구하고 관리지침을 근거로 송입업체가 임금지급을 대행하는 등 법률이 아닌 관리지침과 운용요령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이 정해지고 있는데, 이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으로써 정해야 한다고 한 헌법에 위배되므로, 합리적인 근로조건이 법률에 의하여 보장받도록 관계법령 정비가 필요합니다.

또한, ‘선원법’에서 어선 등에는 휴식시간 등의 규정을 적용 제외하고 있어 20톤 이상 연근해어선과 원양어선에 고용된 이주노동자 등은 근로시간에 대한 상한기준이 없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ILO 제188호 어선원노동협약을 비준하여 ’24시간 동안 10시간, 7일 동안 77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혹은 이에 준하는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합리적인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합니다.

모집과정 송출비용 실태와 개선방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송입 / 송출업체가 20톤 이상 연근해어선 및 원양어선의 선원 이주노동자를 모집과정을 담당하며 과도한 송출비용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어왔습니다.

일례로 2020년 한 인도네시아 송출업체 광고에 따르면, 해당 송출업체는 집, 땅 문서와 함께 약 1천만원 상당의 이탈보증금 포함 송출비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카르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최소 28개월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모았을 때 지불 가능한 금액입니다. 한국에서 몇달만 일하면 송출비용을 갚을 수 있다는 말을 믿은 많은 선원들이 이렇게 과도한 송출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은행이나 송출업체 자회사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친척, 지인에게서 돈을 빌리지만 2017년 해양수산부 조사에 따르면 선원들이 송출비용을 갚는 데에는 24개월 정도 걸려 본국 가족의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집과정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 및 이해당사자 격인 기관의 개입을 막고 공공기관의 역할 강화가 필요합니다. 송입업체에 위탁하는 현재의 관행 대신 수협중앙회가 직접 송입업무를 담당하는 방안 또한 제안되었으나, 1) 지난 임금체불 사건에서 수협 자회사인 송입업체가 연루되었던 점, 2) 수협중앙회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되어 어업인과 수산물가공업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 3) 2007년부터 수협중앙회가 송입업체의 관리, 감독을 담당하고 있으나 송출비리 문제 근절에 실패해왔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이 선원 이주노동자의 송출과정을 전담하여 이주노동자가 과도한 송출비용과 부당한 수수료 등을 부담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임금차별 실태와 개선방안

선원법에 의해 어선의 노동자는 노동시간과 무관한 월 고정급(최저임금) 및 어획량에 따른 생산수당 혹은 비율급으로 임금을 지급받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은 해양수산부 장관의 ‘선원 최저임금 고시’의 ‘적용의 특례’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가입되어 있지 않은 선원 노동단체와 선박소유자단체 간의 단체협약으로 위임되어 정해집니다.

이 노사합의서에 의한 20톤 이상 연근해어선 이주노동자의 2020년 최저임금은 월 172만원으로, 같은 직급의 한국인 갑판원 최저임금 월 223만원에 비해 77% 수준이며, 어획량에 따른 생산수당 또한 이주노동자에게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실제 임금 격차는 더 큽니다. 원양어선의 경우, 3년 이상 경력이 있는 부원의 최저임금은 월 625달러(약 72만원), 3년 이하 경력이 있는 부원의 최저임금은 465달러(약 53만원)로,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 월 239만원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이러한 최저임금 결정은 재위임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며, 법률로써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도록 한 헌법 제32조 제3항의 위반이자 국적에 따른 차별에 해당하므로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과 사회권 규약 제2조에 반하는 사항입니다. 따라서 ‘선원 최저임금 고시’에서 단체협약으로 선원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결정을 위임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국적에 따른 차별금지 및 동등대우 원칙을 선원법에 명시하고, 생산수당 관련 선원법 조항이 이주노동자에게도 실제 적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조건 실태와 개선방안

한 멸치 조업 및 가공업 사업장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 중 일부는 365일 선박에서 숙식하면서 태풍 등이 없는 한 휴일 없이 일하고, 그 외의 선원들은 어장막에서 육상노동을 하며 휴일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원양어선 이주노동자 또한 18~19시간 노동하는 등 장시간 노동과 화장실 및 욕실에, 식수 사용 등에 있어서 차별을 경험하는 것으로 실태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관행적으로 발생하는 임금유보와 임금체불은 송출비용을 내기 위해 진 채무 등으로 이미 재정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재정적, 정신적 부담을 지웁니다. 특히, 위 멸치 조업 및 가공업 사업장에서는 총 1억 원 이상의 임금체불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체불, 인권침해 및 차별 등의 사유로 하선을 희망하는 경우에도 선주의 하선 동의 거부 또는 지연 시 하선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근무처 변경에 대한 송입업체의 지원 시 수수료를 요구해 근무처 변경이 어렵습니다.

열악한 노동 및 생활 환경과 관행적 임금유보 및 체불, 송입업체의 지원을 통한 근무처 변경의 어려움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이탈율이 높은 상황에 대해 ‘외국인선원관리지침’은 선원의 무단이탈이 빈번한 경우 선박소유자와 송입업체에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송입업체와 선주는 이주노동자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고액의 이탈보증금 요구, 여권이나 통장 등 압수, 물리적 고립 및 격리 등 자구책을 강구하고,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침해 상황 속에서도 배를 떠나지 못한채 부당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계속하도록 강요받다가 ‘채무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이탈을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선박소유자와 송입업체에게 이탈 책임을 부과하고 그로 인해 이탈을 막기 위한 인권침해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외국인선원관리지침’과 ‘어선외국인선원운용요령’ 조항을 삭제하고, 이탈 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정책의 구조적 문제 및 취약한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선원근로감독 강화를 위해 근로감독관의 확충이 필요하며, 선상에서의 차별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인권교육과 권리 구제 절차의 체계적, 실질적 강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수산어촌공단으로 하여금 20톤 이상 연근해어선 이주노동자의 모집 및 송출과정으로 담당케 하려했던 한국수산어촌공단법안에서 선박소유자와 송입업체, 한국인 선원 노조의 반대로 업무 이관 관련 조항이 삭제된 상황에서 본 권고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인 송출 및 송입업체가 이탈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취하는 조치들은 이주노동자가 인권침해 상황 속에서 배를 떠나지 못하고 강제노동 상황에 놓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성이 확보된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송입업무가 이관되어야 하며, 권고에도 나와 있듯이 이해당사자격인 수협 혹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에 이주노동자 송출과정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와 인권위 등이 9월 실시한 E-10 선원 여권 압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이주노동자의 약 90%가 불법적으로 여권을 압수당하고 있는데, 그 주체로는 수협, 선주, 송입업체 순으로 많았습니다.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에 취약해지게 하는 여권 압수는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관행으로 만연한데 수협이 이에 앞장섰다는 것은 송출과정을 관리할 공공기관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탈 방지 조치는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배를 떠날 수 없도록 이탈보증금과 여권으로 인질 잡는 것이 아니라, 고용정책의 구조적 문제 및 취약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가 인권위의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여 한국 어업을 지탱하고 있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하루빨리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에 취약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이주어선원 캠페이너 조진서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활동분야

인신매매 피해자 관련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