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8일, CGV 명동에서 상영된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어필이 관람하였습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뉴 커런츠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박이웅 감독의 빈틈없이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기존 장르 파괴적인 성격이 돋보이는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또한 윤주상(영화 속 등장인물 영국) 배우와 양희경(영화 속 등장인물 판례) 배우의 관록 있는 연기 원투 펀치에 마치 ‘연기 차력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쇠락하는 한국 어촌에 대한 문제와 그 속에 남겨진 노인들에 삶과 이주민의 삶,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줄거리 (스포주의)
한국의 한 작은 어촌 마을에서 젊은 어부 용수는 늙은 선장 영국에게 자신이 사고로 죽었다고 위장해달라는 부탁을 해 보험금을 타 내려는 계획을 세우는데요.
용수는 몇 달이면 보험금을 타 낼 수 있을 줄 알고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 계획을 말하지 않고 영국에게만 알렸지만, 아내 영란과 어머니 판례가 본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애타게 찾으며 사망신고를 미루게 되면서 계획이 틀어져 버리고 맙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은 보험금을 받게 될 아내를 조사합니다. 용수의 아내 영란은 베트남 국적 이주 여성으로 한국 국적인 용수와 결혼한 지 2년이 되었지만, 공식적으로 한국 국적이 아닙니다. 즉 그녀는 남편이 죽고 (사실 살아있지만) 아이가 없으니 영주권 신청을 하지 못해 출입국 관리소에 불려 나가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영국은 영란을 주민센터에 데리고 가서 빈털터리로 베트남에 쫓겨날 것인지, 남편 사망신고를 해서 보험금을 타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하게 하고, 이내 영란은 슬픔을 머금고 남편 사망신고를 합니다. 이 사건을 필두로 어머니 판례와 며느리 영란 간의 갈등이 고조됩니다. 이를 보다 못한 영국은 판례에게 아들 용수가 사실은 살아있음을 알리고 판례는 용수와 재회합니다. 하룻밤 사이 영란과 용수가 보험금을 가지고 베트남에 가고, 어머니 영란은 동네 화투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화투를 치며, 영국이 "갔냐?"라고 묻자 "갔지, 그럼!!"이라 답하고 이에 영국은 "됐네, 그럼!!"이라고 소리치고, 영란의 옅은 미소와 다시 바다로 나가는 영국의 배를 비추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한국 어촌과 이주여성
이 영화에선 쇠락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인 한국 어촌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집니다. 어촌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젊은 사람이라곤 용수 (그마저도 보험금을 타내 어촌 마을을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용수의 아내 영란 (베트남 국적으로 이주 여성), 그리고 형락 (과거에 마을에 희망이 없다고 여겨 서울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여인숙에서 묵으며 이따금 영국의 일을 도와주는) 정도가 있는데요.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이주민들이 이러한 어촌 마을로 유입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박이웅 감독은 시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는데요.
동해안 일대 마을을 여러 차례 훑으면서 어촌의 상황과 분위기를 극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어촌 사람들이 처음 극본을 쓸 때보다 요즘 더 뒤엉켜 지내는데 그러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어촌은 선장과 선장의 가족,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는데, 연세가 있는 마을 어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은 하면서도 대화가 부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 이주 여성 영란의 삶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용수와 가진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으며, 용수가 바다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하혈하며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합니다. 또한 2년을 외지인 어촌 마을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된 어촌 일을 하였는데도,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그녀가 한국에서 몇 년을 일했든 간에 남편과의 아기도 없으며, 영주권을 주기는커녕 서류 미비로 강제 추방당할 것이라면서 면박을 줍니다. 이때 영화 속 출입국 사무소 사범과의 고압적인 태도는 어필이 보기엔 현장 고증이 정말 잘 되었다고 느꼈는데요.
이 외에도 마을 사람들은 절대 영란을 자신과 동일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며 은연중에 타자화하고 또 성적 대상화 합니다 (남편 용수가 없어지자, 자기 아내가 되라며 접근하는 마을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와 관련하여 영화가 끝난 후 박이웅 감독과 윤주상, 양희경 배우와 가진 라이브러리 톡에서 양희경 배우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요.
용수가 떠난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용수 행동의 동기에는 영란의 중요성이 있어요. 영란은 마치 마을에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마을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결혼하여 2년을 일했어도 공식적으로 한국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며 항상 타자화돼요.
단순 보험 사기극 vs 장르 파괴적 영화
박이웅 감독, 윤주상 배우, 양희경 배우와 가진 라이브러리 톡에서 박이웅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살려고 발버둥 쳐도 살아오던 데로 살아가기 힘든, 그래서 점점 팍팍해지는 농어촌의 현실과 쓸쓸해지는 인간상을 그리면서도 그 와중에 이러한 현실을 개척해 나가는 주역/주체로서 노년 캐릭터(영국과 판례 등)를 제시하는 기존 장르 파괴적인 결정을 했다고 하는데요. 즉 이 영화는 단순한 보험사기극이 아니라 기존 장르에서는 볼 수 없는 약간은 허술하지만, 자기들만의 적극성을 가지고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용감하면서도 담담한 그리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캐릭터를 선보였다는 것인데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용수를 도와준 영국이 태연하고 담담하게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장면은 마치 출렁이는 파도와 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답답함, 외로움, 또 먹먹함, 그 속에서도 삶에 대한, 또 더 나아질 것이란 것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절대 놓지 않는 그런 용감함을 그렸다는 것인데요.
클로징멘트
이와 관련하여 어필의 한 구성원의 생각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는 책 글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이길 것 같아 싸우는 게 아니다. 이길 것 같지 않아도 싸운다. 그 싸움을 통해 세상이 조금은 바뀌기 때문이다."
어필은 어제와 크게 변화하지 않은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가고 힘든 싸움을 하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고 먹먹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바다 갈매기는’에서 영국이 파도와 같이 반복되는 삶 속 태연하고 담담하게 다시 바다로 나아가듯, 어필은 '이길 것 같지 않아도', 또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어도', 그 싸움을 통해 세상이 조금은 바뀐다고 믿기 때문에 영국과 같이 앞으로, 또 용감하게 개척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7기 인턴 이상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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