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월요일, 어필은 대전역 철도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선원 이주노동자 인권 개선을 위한 쟁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2월 14일, 제주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선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가슴아픈 일이 있었는데요(관련기사) 이번 토론회는 이를 계기로 부산,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관련 이주인권단체들이 모여 입장을 정리하고 공동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어필에서는 김종철 변호사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토론은 김사강 박사(이주와 인권 연구소)의 사회로, 연근해 어선과 원양 어선을 포괄하여 선원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 현황 및 제도적 문제점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토론 내용을 소개해드리기 앞서, 오늘의 쟁점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대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며, 무엇이 그들을 인권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걸까요?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크게 상선원과 어선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어선원, 특히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20톤 이상의 연근해어업 종사자와 원양어업 종사자의 상황이 가장 열악합니다. 이미 선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원양어선의 경우 약 70%, 20톤 이상 연근해어선의 경우 약 30%로 결코 작지 않으며, 따라서 선원인권 논의에서 외국인 선원 문제를 더 이상 별개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심각한 임금 격차 및 차별 외국인 선원들은 내국인 선원과 비교해 심각한 임금 격차 및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원 임금 체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20톤 이상 선박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선원법의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원법에서는 해양수산부장관고시에 따른 최저임금을 정할 것을 명시하고는 있지만, 24시간 배에 승선해 있는 어선원의 특성상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시간 외 근로수당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금전적 보상으로서 어획량에 따라 일종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임금 체계(‘보합제’)가 성립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 선원의 경우 최저임금만 지급받을 뿐, 이러한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원은 해양수산부장관고시 상의 최저임금 적용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정부의 관리감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선원 당사자가 아닌 내국인 선원노동단체와 선박소유자단체 간의 단체협약을 통해서 결정되는데,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입니다. 외국인 선원에게 주는 기본 급여가 커질수록 보합제를 통해 받는 성과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내국인 선원들은 외국인 선원들의 임금을 높여줄 유인이 없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외국인 선원들은 최저임금 적용이 되지 않는 낮은 기본급 + 보합제 배제라는 이중적 차별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선원이주노동자는 연 9,600,000원을 받는 반면, 내외국인을 모두 포함한 ‘선원’의 연평균임금은 29,696,00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외국인 선원을 통계에서 제외한다면, 그 폭은 훨씬 커지겠죠? [20톤 이하 연근해어선 및 이중적 법체계에 관하여는 이일 변호사가 작성한 다음 포스팅 참고: http://www.apil.or.kr/1321] 2) 송출-송입 과정에서의 취약성 그런데 이렇게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및 거기에 더한 인종차별적 폭력, 성추행 등에까지 시달리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왜 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담보로 잡힌 보증금(물) 및 받지 못한 임금 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배에 오르기까지 먼저 입국 전, 현지 송출업체에게 선원 모집 과정에서 송출금 및 고액의 담보(물)를 요구받고, 입국 후에는 송입업체(관리회사)로부터 관리감독을 이유로 통장, 여권 등 신분증을 빼앗깁니다. 통장을 빼앗겼기 때문에 임금이 언제 들어오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임금체불 및 횡령이 만연한 상황입니다. 즉,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취약성을 악용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제하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이탈을 막아 노동력 수요를 채우기 위한 추가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강제노동이며, 인신매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각 문제들이 연결되는 자세한 맥락에관하여는 김종철 변호사가 작성한 다음 포스팅 참고: http://www.apil.or.kr/1125] 3) 관리감독의 부재 송출-송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적 관행 등은 대부분 불법입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성행하고 있고, 당국은 ‘업종별 특성이 달라 관리감독이 어렵다’며 사실상 감독 의무를 방기하고 있으며 진정 등의 처리도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송입 과정은 정부가 아닌, 선사 및 선주들의 이익단체인 수협이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토론회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장에서의 많은 구체적 사례들과 해결책에 대한 고민들이 나누어져,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깊이있는 논의가 지속되었습니다.
1) 연근해어업 – 여전한 인권침해, 취약한 보호
먼저 연근해어업과 관련해서는 2012년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인권침해적 관행의 지속과 정부의 해결 의지 부족,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산재 및 재해보상 문제가 논의되었습니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의 오세용 소장은 상담 사례 발표를 통해 많은 선원이주노동자들이 여전히 낮은 임금과 잦은 체불, 욕설 및 폭행 등의 문제에 대해 ‘이탈’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경우 임금체불, 신분증 압류 문제는 해양항만청 진정을 통해 해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수협 및 정부는 대부분 ‘우리 소관이 아니다’ 혹은 ‘이탈해서 선주 피해본 것을 감안해 조정 합의하라’고 요구하여 선주의 입장을 더 고려하는 형편입니다. 정부 공식통계로만 선원이주노동자 중 이탈자 수가 3~4천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상담 사례는 10%에 불과해, 이주 단체 중심의 운동이 더 전면화될 필요가 있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선원이주노동자의 주체화 및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산재를 당해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주민과함께 잇페이 의료팀장은 우측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으나 선주 및 수협으로부터 제대로 된 요양치료절차를 통지받지 못해 필요한 치료조차 충분히 받지 못하고 부당해고당한 중국인 S씨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선주들이 언어 등에 취약한 외국인 선원들을 속여 귀국시키는 등 비용을 아끼려 마땅히 받아야 할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최저임금 차별은 재해보상 차별 문제로도 연결되고 있었는데요. 정재형 변호사는 외국인 선원의 사망사고 발생시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된 차별적 최저임금이 보험금 지급 기준이 되어, 한국인 선원에 훨씬 못 미치는 보험금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2010년 선박 침몰로 사망한 외국인 선원에 대해 한국인 선원과 동등한 보험급여를 지급하라는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중에 있습니다.
2) 원양어업 – 관리감독 부재 및 열악한 인권 상황
원양어선 외국인 선원들은 근로감독의 현실적 어려움 및 관할권 문제, 쟁의행위 제한 조항 등으로 인해 연근해 어선의 경우보다 더 열악한 지위에 있습니다. 원양어선과 관련해서도 역시 2012년 실태조사 당시 제기되었던 언어적, 신체적 폭력 및 열악한 노동 환경, 보증금(물) 및 임금을 담보로 한 강제노동 양태 등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제기되었습니다.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사조오양 사건 이후 정부가 적극적 대응에 나서 실태조사단이 꾸려지긴 했지만, 2013년 국토해양부 고시에 원양어선 최저임금의 국제수준(ILO Minimum Wage) 인상안이 들어갔다가 2014년 적용상 모호함을 이유로 다시 삭제되는 등 실태조사 이후 실제로 개선된 사항이 없음을 지적하며 정부가 약속했던 이행 조치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실행을 촉구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지적했습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실제적 해결을 위한 앞으로의 운동 방향으로, 기국 뿐 아니라 항만국 시민단체와의 국제적 연대를 통한 감시와 규제 확보, 이미 존재하는 선원 노동자 보호 규정들의 이행 촉구, 어선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 가입 촉구 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은 2014년 ‘선원들의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해사노동협약(MLC)을 비준하였고, 이는 2015년부터 발효될 예정인데요. 비록 해사노동협약이 어선은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이행하기 위해 개정된 선원법에는 어선원을 포함한 선원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좋은 조항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요. 김종철 변호사는 따라서 직접적인 어선원 보호 규정을 담고 있는 ILO 어선원 노동 협약(Work in Fishing Convention) 가입 촉구 및 선원법 개정 운동과 함께, 기존에 존재하는 선원 권리 보호 규정들을 잘 적용하고, 그간 도외시 되어 왔던 송출기관의 비위를 근절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도 원양어선 외국인 선원들은 연근해어선 선원들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내외국인 선원간 임금차별을 정당화하는 반대측의 논거(‘생산성이 차이난다’, ‘임금 차별은 국제적 관행이다’ 등)을 반박할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응이 가능할까요?
참여 단위들은 1)임금제도 및 임금차별, 2)송출-송입회사 문제, 3)관리감독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주요 내용임에 의견을 모으고, 특히 차별적 임금 관행이 다른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기존에 문제제기 해 왔던 최저임금 차별 문제 뿐 아니라 근본적인 ‘임금체계’ 자체에 문제 제기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소송, 선원법 개정을 비롯한 의원실 연계 입법운동, 연구 및 국제 연대 등을 위한 장기적 액션 플랜을 작성하여 보다 효과적인 운동을 펼쳐 나갈 예정입니다. 특히 정부가 2013년 4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여 실태조사 및 대책을 마련한 이후, 올해 들어 여러 변명을 통해 개선안을 후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데에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취약성과 함께 이주자, 외국인이라는 취약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약자입니다.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그들의 노동을 취하고 필요 없어지면 너무 쉽게 버리는 비인간적인 구조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가장 취약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이 보호되도록 최소한의 법제도를 마련하고 정부의 움직임을 촉구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어필은 기업의 인권침해 피해자이자, 인신매매 피해자이기도 한 선원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각 단위들과 연대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오랫동안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인 만큼 글을 읽은 여러분의 응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필의 활동을 지지해주시고, 함께해 주세요!
(7기 인턴 김윤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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