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노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선생님 인터뷰!

2012년 7월 26일

프로보노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선생님 인터뷰

: 공감으로 모든 곳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사람들을 보듬고

  치유하는 삶   

저희 어필은 7월 25일 수요일 점심 때 난민 분들의 정신과 진료를 도와주신 문지현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한식의 고급화 추세를 물씬 느낄 수 있었던 맛난 식사와 함께 선생님께 그간 저희 어필이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드렸습니다.

어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이 OECD 자살률 평균의 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도 매우 높은 실정이고요.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전반적으로 무척 병리적인 면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문지현: 정신과 전문의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아무래도 급속도로 또 압축적으로 진행된 근대화로 인하여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쟁, 욕심, 물질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서 삶을 견뎌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과 진료를 받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까닭에, 정신과 진료를 요하는 사람들 중 단 16%만이 진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외국에서는 오히려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엔 정신과 진료 경험을 숨기고 싶어 하는 풍토가 만연합니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음성적 인식이 개선되기만 해도 높은 자살률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어필: 하지만 소위 제3세계에서는 사실 정신질환이 그리 많지 않고, 자살률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구호물품을 보낼 때 신경안정제를 보내기도 하는데, 정작 구호물품을 받는 사람들은 그런 약을 필요로 하지 않지요.

문지현: 자살률이 확실히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면서 증가한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전쟁, 기아로 인한 사망이 높은 후진국의 경우, 자살률이 낮지요.

어필: 제 큰 아이가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는데, 요즘 중학교 아이들이 너무 폭력적이라서 걱정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문지현: 모든 아이들이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난 까닭에 많이 뒤틀린 것 같습니다. 청소년 수면시간 평균도 너무 짧습니다. OECD 가입국들 중에서 가장 적게 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엔 공부를 많이 했고, 동시에 몸이 병약하여 행복하진 않았었습니다.

어필: 왜 의사가 되고 싶으셨나요?

문지현: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재미난 이론이 있습니다. ^^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기제의 일환인데, 자신에게 강한 충격을 준 사람을 모방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해주지요. 혹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견뎌내야 했던 며느리가 이후 더욱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병약했던 제게 강한 충격을 주었던 분들 가운데 의사 선생님들이 많으셨습니다. ^^;; 그래서 그 분들과 동일시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정신의학을 배우고 나서 잠시 해봤던 적이 있습니다.

어필: 왜 정신과를 택하셨나요?

문지현: 수련 시절에 한 젊은 여자 위암 환자 분이 너무도 빨리, 금방 돌아가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에겐 어린 딸도 있었습니다. 암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젊은 나이에, 너무 어리고 어여쁜 딸을 둔 분이 어쩌다 저런 병에 걸리시게 되었는지, 그게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그 분의 이야기 보다는 병 자체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게중심을 환자의 삶의 과정에 둘 필요성을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신과는 환자의 ‘history’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주어진 육체의 현상을 고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지난 삶 전체와, 때로는 미래마저도 공감하며, 어딘가 맺히거나 꼬여 뒤틀리고 단절된 지점들을 서서히 치유해나가는 정신과의 치료 작업에 매료되어 이 길을 택했습니다. 환자 분들을 병명이나 환부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 전체로 인식할 수 있는 동시에 이 분들이 마음속에 숨겨두고 지내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할 수 있는 정신과를 택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필: 그 점에서 저희 어필과도 많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희들 역시 난민 분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여,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어필: 그런데 정신과 의사 분들 중에도 사람을 환원주의적으로 보는 분이 계시지 않나요?

문지현: 물론 신경 물질로만 정신을 바라보는 정신과 전문의 분들도 계시고, 또 마음이나 습관에 주목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신과 진료 방법론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도와드리고자 하는 분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줄 아는 역량이 정신과 진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필: 그런 의미에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심리사 사이에 알력이 있지는 않은지요? ^^

문지현: 서로 자신의 분야는 너의 분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기류가 없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약을 쓰는 물리화학적 간섭과 상담에 의존한 언어적 소통, 이 두 방법론의 우열을 논하는 논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서로 잘 하는 일이 다르고, 하는 역할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필: 난민 분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어떻습니까?

문지현: 이렇게나 심각한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오래 동안 살았다는 것이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진료를 맡았던 난민 분들이 겪는 충격은 제가 그 동안 치료해 왔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어필: 사실 난민 분들에게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초창기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도 저희들에게 정신적이고 생활적인 어려움을 잘 토로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법률 서비스를 하는 저희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필: 어떻게 어필과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문지현: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님이 해외 의료 구호 단체인 글로벌 케어에 프로보노 정신과 의사를 요청하셨고, 글로벌 케어에서 저를 소개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필: 최근 진료 받은 난민 분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문지현: C씨와 M씨 모두 처음에는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지금 C씨는 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M씨는 치료를 마쳤습니다.

어필: M씨와 C씨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문지현: 이 분들이 대체 어떻게 ‘살아남으셨는지’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실 때마다 “여러분은 용감하십니다!”라고 C씨에게 말씀드리곤 했었습니다. 두 분을 처음 진료했을 때만 해도, 두 분 모두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본인들을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 ‘화이터’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필: 두 분의 상태가 호전된 것엔 물론 의학의 도움도 컸지만, 아무래도 문지현 선생님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저도 상담을 하다 보면 다른 이들의 아픔이 전이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로펌에 있을 땐 사실 의뢰인과의 심적 거리를 많이 멀리하며 상담하곤 했는데, 어필에서 난민 분들을 돕기 위해 사연을 들을 땐 심정적으로도 동일시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의사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사정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문지현: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이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게 저희 정신과 의사들의 수련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에겐 동정 말고 공감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도와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낼 수 있기에, 결코 둘 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감과 동정을 구분하면서, 의뢰인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필: 난민 환자 분들을 다룰 때 특별히 여타 환자 분을 대할 때와 다르게 대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문지현:  VIP 증후군이라는 의사들 사이의 금과옥조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소개나 어떤 특별한 계기로 찾아온 사람에게 특별히 잘 해주는 경우 나중에 꼭 뒤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 합니다. 다른 환자 분들과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분들이라고 해서 괜히 특별한 대우를 했다가 치료에 최적화된 감정적 거리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심한 일을 당하시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정신과 환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했습니다.

어필: 외국 같으면 늦게 치료할수록 안 좋으니까 난민들이 일찍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지원도 해주었을 텐데요.

문지현: 우리나라 국민들도 우울증을 정신과에서 치료 받는 비율이 16%라니까, 난민에 대한 지원이 없을 법도 합니다, 사실. 너무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어필: C씨의 정말 선생님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급진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문지현: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이전에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이 많으셨는데, 이제는 살아남은 사람으로, 이겨낸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전회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사람들이 비참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게 너무 아름답고 기적 같습니다. 환자 분들이 달라질 때, 개선될 때, 가장 보람찹니다.

어필: 노숙인, 성매매 피해자들을 계속 돕고 계신데, 어떤 계기로 유료 환자 분들 말고도 또 이런 분들을 돕기로 결심하셨는지요?

문지현: 제가 거절을 잘 못해서요 ^^;; 제가 속해 있는 누가회 출신의 선배가 노숙인 진료센터장으로 계신데 그분의 부탁으로 하는 일입니다. 노숙인 정신질환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노숙인의 3분의 1이 정신질환자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아울러 성매매 피해자 분들의 쉼터가 마포에 있는데, 마포 지역 여성 정신과 전문의를 찾으시다가 제게 요청해 오신 것을 거절하지 않은 게 성매매 피해여성 돕기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이들 피해자 분들은 깨진 가정 출신인 경우가 많고 또 본인들도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정신은 더욱 마모되기 쉬워집니다.   

     점심식사 이후 진료 약속이 있으신 선생님을 따라 저희는 황급히 선생님의 진찰실로 따라 들어간 뒤 예쁜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문 위의 “주께서 이 사람을 이리로 보내셨다”는 영어 문구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세계의 아픔이 응집된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난민 분들의 영혼을 진정성 어린 손으로 보듬어주시는 미녀 프로보노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선생님께서 지금까지처럼 이제와 항상 영원히 이 땅의 박해받은 자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백의의 인의(仁醫)로 세상에 쓰임 받으시길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진찰실 문을 나섰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간 저술하신 저서들에 친필 서명을 해서 저희에게 수줍게 나눠주셨는데, 특히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정수가 담긴 책을 받은 진유선 인턴의 표정이 특히 훈훈했습니다. ^^

(3기 인턴 강태승 작성 채록 및 편집)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