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언제 풀려날지에 대한 기약도 없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시나요? 이 모든 게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영화 속 상황이 아니라, 2014년 대한민국 외국인보호소에 장기구금된 이주민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주제는 보호소에 장기구금된 이주민들의 정신 건강 문제입니다. (*외국인보호소 문제의 원인과 인권침해적 환경 일반에 대해서는 18개월 구금에서 해방된 Arif씨 이야기, 청주 외국인보호소 방문기 참조) 한국에서 대부분의 장기 구금된 이주민들은 난민 신청자들입니다. 따라서 장기구금 이주민 문제는 난민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의 장기 구금? 외국인보호소는 본래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 외국인들에 대한 강제퇴거명령 집행 전 임시로 구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난민 신청자들이 보호소에 구금될 경우*, 귀국 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기에 현실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미비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행정 관행 때문에 최초신청-이의제기-재판(1심, 항소심,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몇 년에 이를 수 있는 난민인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기약 없이’ 보호소에 갇히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본국에서의 박해 등으로 정신적으로 취약한 난민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 구금될 경우, 더 악화된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난민 신청자들이 보호소에 구금되는 사례는 구금 이후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 난민 소송 중 허가 없는 취업 등으로 적발되어 구금된 경우, 사정상 위조여권을 사용하여 입국한 것이 후에 발견된 경우 등 다양하다.
난민(신청자)들이 지니는 특수성으로서의 ‘취약성(vulnerability)’
난민들이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난민들은 본국을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구금, 고문, 강간 및 일상적 위협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최소 수 개월에서 최대 몇 년까지 지속될 수 있는 난민인정절차 과정에서 본국으로 송환될 것에 대한 두려움, 본국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 등으로 추가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다른 이주민 그룹과 다르게 난민신청자들은 정신적 취약성을 그 특수성으로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난민들이 겪고 있는 특수성으로서의 정신적 취약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할까요? 우선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난민 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기 쉽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난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엄성을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난민신청 단계에서부터 적절한 정신건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난민신청자 및 난민에 대한 정신과 진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정신적 트라우마 여부에 대한 고려 등 난민 인정 절차 전반에 걸쳐 적용하고 강화하는 추세이며, 난민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JRS 보고서 ‘Becoming Vulnerable in Detention’ 표지 – 다운로드]
장기 구금이 이주자들의 정신건강에 끼치는 악영향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정신적 취약성으로 인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민신청자들이 장기 구금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정신의학저널에 수록된 한 논문은 “구금된 난민 신청자의 경우는 이에 더해 ‘구금 자체’ 및 ‘구금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추가적으로 노출되며, 많은 의사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난민 구금 중단을 요구해 왔다”[ref]British Journal of Psychiatry(2009), Mental health implications of detaining asylum seekers:systematic review[/ref]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 논문뿐 아니라 난민 구금 문제를 다룬 많은 보고서들은 ①구금 자체가 장기 구금자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며, ②난민(신청자)의 취약성과 결합하여 더욱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국제난민지원단체 JRS의 2010년 보고서는 유럽 각국의 구금 시설 수용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구금은 그 자체로 정신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고, 이는 육체적 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적으면서 이는 ‘구금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 열악한 구금 환경(구금 규율, 음식, 공동 생활 환경, 외부와의 단절, 의료 서비스 부재, 언어적/신체적 폭력 등) 및 정보 부재(자신이 처한 법적 상황, 구금 기한, 외부에 있는 가족의 생사 여부, 본국 송환 가능성 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구금된 이주민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식욕 감퇴, 불면증, 자해 등으로 이어져 신체적 건강의 악화로까지 연결됩니다. 장기구금이 구금자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간략히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호소에 구금된 이주민들은 내국인과 비교할 때 구금될 때의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새 삶에 대한 기대와 안도감이 구금으로 인해 좌절될 때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보호소에 구금된 이주민들은 체류 자격이 없어 행정적 처분의 결과로 구금된 것이지지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옥처럼 창살이 쳐진 보호소 에서 이주민들은 구금을 형벌로서 인식하고 억울함과 공포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친구 및 가족들과 단절된 상황에서, 보호소 직원과의 의사소통 문제가 발생하거나 난민 신청과 관련한 자신의 절차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할 경우 극심한 긴장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기 쉽습니다. [2012 UNHCR 구금 가이드라인 표지 – 다운로드]
실제로 UNHCR, 국제엠네스티 등 다양한 기구들은 구금 제도는 필요불가결한 상황에 한해 제한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특히 난민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취약성을 특수하게 다루어야 함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2012년 개정된 UNHCR 구금 가이드라인에서는 난민신청자가 무단 이탈할 것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있는 경우 혹은 최초 신분확인을 위한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구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구금자에 대한 ‘심리 상담을 포함한 적절한 의료 행위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정신 건강이 구금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48항에서 ‘예방적 차원에서의 주기적 진찰이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보호 해제를 포함한 치료 행위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또한 63항에서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능적, 감각적 장애를 겪고 있는 난민은 구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반 원칙으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강제구금에 대한 국제엠네스티의 2005년 보고서도 구금이 정신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정신질환의 우려가 있는 난민신청자들을 구금하지 않고도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구금의 대안(alternatives to detention)’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청주 외국인 보호소]그렇다면 한국 보호소는 이런 권고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은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허용되는 등 구금 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난민의 정신적 취약성에 대한 적절한 배려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의료 인력이 부족해 적절한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확보가 어려운 것은 물론, 열악한 보호소 환경 및 인권 침해적 관행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취약한 구금자들의 2차적 피해가 굉장히 우려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한국 보호소에 장기 구금되어 있었던 이주민들의 경우, 구금되어 있는 동안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사전 진찰 및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구금에서 풀려난 이후에야 문제를 발견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필에서는 프로보노 활동에 뜻을 가진 정신과 의사 분들과 협력하여, 난민 분들이 구금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협력의 범위가 사후적 치료뿐 아니라 예방 및 제도적 개선의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사진: 화성 외국인보호소 면담실. 감옥과 구분하실 수 있나요? [출처: 난민인권센터]
정책개선
사후적 치료를 넘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금 자체가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임을 인식하고, 난민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전 예방 및 보호의 관점에서 구금 제도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까요?
1) 단기 – 충분한 의료, 법률, 언어 접근성 보장
단기적으로는 먼저 구금된 이주민은 누구라도 적절한 신체적, 정신과적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과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는 모든 국제 규범들이 구금의 최소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을 만큼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외국인 보호소에서는 보호소 내 의료 인력이 보호소당 전문의가 아닌 의사1명이 전부로서 부족하여, 전문성을 가지고 편견 없이 구금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 인력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외부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보호소를 내방할 수 있도록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필요한 경우 외래 진료를 포함한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난민 자신은 본인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고 구금 과정에서 새로운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더라도 구금된 이주민에 대한 정기적 심리 상담을 포함한 예방적 치료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 접근성의 보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난민 신청자가 자신의 구금 기간 및 절차 등 객관적인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면회, 편지, 전화기 이용 등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2013 국가인권위 외국인보호소 방문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된 이들의 73.8%가 난민 신청 절차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난민 신청할 권리가 있음도 알지 못한 채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난민 신청 절차에 대한 고지를 의무화하는 한편 외부의 상황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가족 및 친구, 그리고 어필과 같은 난민지원단체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 난민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에 덧붙여, 의료와 법률 서비스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통역 등 적절한 언어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보호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한 언어적 폭력의 배제 등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입니다.
2) 장기 – 구금의 제도적 대안 마련
그런데 앞서 강조했던 바와 같이 ‘구금 자체’가 장기구금자의 정신 건강 문제를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정기적 사법심사의 도입 등을 통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구금제도 운용에 법적 제한을 가하고, 더 나아가 구금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금을 하지 않는 대신 정기적으로 소재를 확인하는 방식 등을 통해 피해는 최소화하면서도 출입국관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데요.
UNHCR 구금 가이드라인에서는 1)난민신청자가 여권 등을 제출하는 방식, 2)정기적으로 이민국 및 경찰 등에 소재 보고를 하는 방식, 3)지정된 주소에 거주토록 하는 방식, 4)보증인/보석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식, 5)지역사회 감독 방식 등을 다양한 구금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구금을 대체하는 제도들은 특히 임신한 여성, 아동, 장애를 가진 사람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난민신청자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회와 교류하며 난민인정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구금이 끼치는 정신 건강상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난민 인정 이후의 사회 통합 과정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화성 외국인 보호소 내부 사진. 감옥처럼 창살이 쳐져 있다. [출처: 연합뉴스]
나가며 –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한국에서 난민의 건강권 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특히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실태 조사도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 보호소 내 장기구금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는 감옥처럼 높은 담장 안에 가리워져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져 왔습니다.
이른바 ‘인권 선진국들’ 또한 구금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는 구금이 출입국 관리라는 민감한 영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리서치하면서, 인권 논의가 진일보한 국가들에서는 난민지원단체들 뿐 아니라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 집단들 및 여성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 사회 영역에서도 난민 및 구금된 이주민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폭넓은 논의 및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난민 문제를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첫 번째 자세가 아닐까요? 장기구금자 정신건강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필과 같은 법률가단체 및 난민지원단체뿐 아니라, 심리 전문가 및 정신과 의사 등 전문성을 가진 분들의 도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고 계신 시민 분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구금된 이주민들의 더 나은 이야기를 위해 함께 하고자 하는 어필의 활동을 응원해 주세요!
(7기 인턴 김윤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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