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매년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 현황을 담은 인신매매 보고서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TIP Report)를 발행합니다. 올해에도 지난 7월 1일 보고서가 발행되었는데요, 2021 TIP 보고서 속에 담긴 한국 어업의 모습을 전달해드립니다.
올해 TIP 보고서에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인신매매의 주요 유형 중 하나인 어업에서의 이주어선원 착취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이행되어야 하는 우선 권고사항(Prioritized Recommendation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 국제법에 따른 인신매매를 이해하도록 관련 공무원을 교육할 것
- 특히 어선에서의 강제노동 인신매매자를 수사, 기소 및 처벌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
- 어선 근로감독 체계를 개선할 것
- 항해기간 제한할 것
- 신분증 압수 금지 및 위반시 처벌할 것
- 송출국과 한국에서 선원들이 지불하는 송출비용을 근절할 것
특히 4~6번의 내용은 <누가 내 생선을 잡았을까?>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이 요구해오던 사항이기도 합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내용도 있지만, 한국에서 특히 어업과 고용허가제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문제는 ‘인신매매’의 국제법상 개념이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탓에 단순 임금체불 등 노동법 위반 사항으로 여겨져 제대로 대응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고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노동 인신매매 피해자와 협력 중인 비정부 기구들에 의하면 출입국 담당관 및 근로감독관들은 관련 범죄에 대하여 지속적인 이해 부족을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잠재적 노동 인신매매 사건들을 행정 위반 건으로 처리했다”
한국 어업에서의 노동조건
TIP 보고서는 한국 노동법의 틈새를 이용하여 이주어선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간에 대한 보호가 없어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은 차별적으로 정해지는데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공개조차 되지 않습니다. 또한 참치 연승선의 경우 세계에서 항해기간이 가장 길정도로 한국 어선의 긴 해상체류기간으로 인해 근로감독이 어렵고, 착취적 임금 공제나 노동자 부담 송출비용으로 인해 채무관계에 의한 강요(debt-based coercion)로써 노동자들이 착취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신체적 및 언어적 폭력, 부당한 임금 공제, 부족한 식량과 식수, 비위생적인 생활 및 노동환경과 일상적인 여권 압수도 지적되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2020년, 이주어선원이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브로커와 송출·송입업체로 인해 착취당하거나 채무관계에 빠지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협중앙회에 이주어선원 송출입 업무를 담당케하는 대책을 내어놓았습니다. 영리업체들이 이주어선원의 송출과정을 주관하기 때문에 연근해어선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 선원들이 최대 $13,000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원양 이주어선원은 3개월분의 급여를 ‘보증금’으로 유보당해 받지 못하는 관행이 만연하니 수협중앙회에 그 업무를 이관하겠다는 것입니다. 12월에는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이주어선원의 노동조건 개선 대책도 발표했으나 시민사회는 두 대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습니다:
- 수협은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송출업무를 위임할만큼 그 공공성을 보장할 수 없음
- 이주어선원에 대해 ILO 표준 최저임금을 따르겠다는 대책은 여전히 국적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 위반
- 휴식시간 보장에 대한 유연성을 허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여전히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함
- 송출비용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아 이름만 바꿔서 청구할 수 있음
- 대책에 따르더라도 최대 15개월까지 연속 해상 체류가 이어질 수 있음
TIP 보고서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함께 정기적 감독 없이 이 대책들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인신매매 처벌을 위한 법의 부재
한국이 2015년 비준한 유엔 인신매매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행사, 강박, 납치, 사기, 기만, 취약한 지위의 악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업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은 물론 관련 법체계조차 이러한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인신매매 착취방지와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이하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되며 국제법상 인신매매 정의가 반영된 국내법이 마련될까 하는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형식적일뿐인 법이 되었습니다.
인신매매특별법제정을위한연대회의를 구성한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법은 물론, 새로 제정된 특별법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음을 지적하고 TIP 보고서에도 우려사항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TIP 보고서는 한국의 인신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법체계상 처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닌 이행의 문제로 보고 특별법에서의 포괄적인 처벌 조항 없이 현행 법으로도 국제법상 인신매매가 한국에서 모두 처벌 가능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형법, 근로기준법 등 각종 법을 모두 종합해도 적어도 국제법상 노동착취 목적 인신매매의 성인 비장애인 피해자는 그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노동착취와 관련되는 형법 제288조, 제289조, 제292조, 근로기준법 제7조, 선원법 제25-2조의 적용 범위가 국제법에 비해 훨씬 협소해 실제 인신매매 사건에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여주듯 위 조항 중 2013년 이후 노동착취 목적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형법 제288조인데, 약 8년 동안 단 13차례 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은 ‘인신매매 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특별법에서 넓혀진 인신매매의 정의가 형법 등 처벌 가능한 법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을 고의적으로 만드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용어 사용으로 통계를 부풀려 한국이 인신매매 대응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국제사회에 보고하겠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처벌되지 않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인신매매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지난 2019년, 아일랜드는 2013년 이후 인신매매죄로 처벌된 사람이 없으며 2018년 동안 기소조차 한 건도 없었고 피해자 식별과 보호 체계가 만성적으로 미흡한 점을 들어 TIP 보고서에서 2등급을 받았습니다. 2020년 대만의 수산물은 미국 노동부가 발표하는 강제노동 상품 리스트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아일랜드와 대만 어업의 노동조건, 특히 이주어선원에 대한 노동조건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2003년 이후 1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과연 1등급을 받을만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이주어선원 캠페이너 조진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