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필 뉴스레터 구독자님.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작년 9월부터 인턴으로 근무한 카야(Kaya), 안가영입니다.
구독자님은 첫 직장을 기억하시나요? 저의 첫 직장은 어필입니다. 이곳에서 첫 출퇴근을 했고, 첫 급여를 받았고, 첫 명함을 가지는 등 어엿한 노동의 순간을 어필과 처음 하고 있습니다. 첫-으로 시작하는 몇가지를 구독자님과 나누고자 합니다.
첫 기자회견
10월의 어느날, 사람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서대문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인신매매 피해인데, 사안이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말이 뒤따랐습니다. 한국에서 인신매매? 성착취인가? 궁금증을 품고 도착한 곳에는 생소한 ‘계절근로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란 파종기‧수확기 등 계절성이 있어 단기간‧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문제는 고용 과정에서 브로커의 횡포로 임금 착취, 인신매매가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저는 농‧어촌의 노동 환경에 대해 근본적인 이해부터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일개 브로커가 지자체의 공공형 제도에 개입해서 이득을 탐할 수 있는지, 계절노동자의 가족까지 형사적 협박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막연히 힘을 보태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수 대의 카메라를 마주한 채, 플랜카드를 들고, 구호를 따라서 외쳤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뒤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저스틴과 나눴던 대화가 기억 납니다. 요는 주춤거리고 긴장만 하다가 끝난 것 같아서 속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날의 기자회견에서 비틀거리던 저는, 정의를 추구하는 행동에는 사유가 뒤따라야 함을,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첫 네트워킹
11월, 전국이주인권대회가 2년만에 열렸습니다. 약 200명의 이주인권 활동가가 모여서 발제, 토론하며 연대하는 장입니다. 평소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난민신청자 분들을 마주뵙니다. 막 공항으로 입국해서 난민신청을 준비하는 분,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거주하다가 난민 재신청을 희망하는 분, 보호 해제를 기다리며 보호소 안에서 난민신청을 진행하는 분 등 대개 이주민 중 '난민'의 영역에 계신 분들을 뵙습니다. 반면에 전국이주인권대회는 이주여성, 이주노동, 이주아동, 이주어선원 등 난민을 떠나서 이주민으로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담습니다.
분명 인턴 3개월차에 난민신청절차도 대충 알고 있는데, 이주인권대회의 내용 절반 이상이 낯설었습니다. 어렵다를 수십번 되뇌이며 비틀거린 끝에서야, 이주인권은 사무실에서 홀로 그리던 세계보다 훨씬 드넓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난민이기 전에 이주민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인권이 있음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첫 보호소 면회
'보호소'라고 저장된 전화를 받을 때면, 각기 다른 음성의 분들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조력을 요청받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두려움이 건네집니다. 일정한 자유가 박탈된 곳에 거주하는 것의 두려움입니다. 대체 외국인보호소는 뭐하는 곳이지? 보호인가, 구금인가? 그곳의 환경이 궁금해질 때 즈음,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난민 분을 접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반면회실은 매체 속 교도소 면회실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가운데 유리를 두고 분리된 공간에서 스피커에 의지해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특별면회실은 소파가 있는 보통의 방이었지만, 외부인이 출입한 문에는 무거운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습니다.
외부인조차 법무부 직원의 허가가 있어야만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 저절로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받던 보호소발 전화를 떠올리며, 보호소 한켠에서 비틀거릴 수밖에 없던 난민 분의 시간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첫 동료
이상의 순간들에서 제가 비틀거릴 수 있던 이유에는 해나, 저스틴이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나의 소심함에 속상할 때, 이주인권 활동가 분들과의 대화에서 쭈뼛거릴 때, 보호소 난민 분을 대면할 생각에 긴장될 때... 어필의 카야로서 첫-을 경험하다가 확신이 들지 않아 주저할 때면, 나도 같이 할게!라며 선뜻 보폭을 맞춰주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어필이 비틀거리며 짓는 것은 분명 ‘정의’입니다. 그 곁에서 제가 여섯 달 가까이 지은 것은, 저 자신인 것 같습니다. 어필에서 제가 비틀거리며 카야를 짓는 순간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